한번 묻고 싶다.
인천 부평인지, 부평인지? 이 물음에 인천 사람들 특히 부평 사람들은 멈짓할 것이다. 부평이면 부평이지 왠 인천 부평인가 하는 문제 의식을 부평의 이른바 골뺑이들은 간직하고 있다.
이 질문에 대한 진지한 대답을 얻지 못하거나 치열한 고민 없이는 인천의 문화 담론, 아니 부평문화권을 구축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왜 이 질문이 중요한 것인가를 아는 사람들이 인천에서 부평에서 몇 되지 않는다는 것이 가장 큰 문제다. 지역 담론을 형성하지 못한 채 문화적인 행위들을 하는 것은 그냥말로 맹탕이 되거나 지역 정체성을 살리지 못하게 될 것이 분명하고, 행정의 책상에서 이벤트적으로 예산안을 소진하거나 인천도 모르는 사람들을 외지에서 박아 넣은 악순환을 거듭하면서 인천이라는 지역은 점점 그 색깔을 잊어버리게 된다. 그래서 지역에서 문화 정책을 수립하고 집행하는 것이 매우 정치적인 행위로 받아 들여진다.
건데. 시가 느닷없이 한국대중음악자료원을 부평 미군부대 내부에 100억원 규모로 세운다고 언론을 통해서 발표했다.
왜 한국대중음악자료원을 느닷없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게 된 곡절은 이렇다. 자료원이라는 것은 과거 역사를 담아내는 데다. 부평이 영미의 팝음악을 온전하게 받아낸 것이라는 것은 현재 조금씩 시작된 자료 발굴을 통해서 확인되고 있기는 하다.
그러나 현재에서 그 길을 보면 아직 갈 길이 멀다. 부평에서 음악은 부평문화권을 이해하는 기제에 불과한 것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그래서 부평미군대 안에 한국대중음악자료원은 느닷없음이다 로 표현할 수 밖에다.
그래서 본말이 전도된 느낌을 지을 수 없다.
부평구가 부평음악융합도시 추진을 정부에 제안해서 5년동안 국비를 지원받은 것은 부평에서 현대 시기에 미군기지 에스컴시티 중심으로 새로운 음악 리듬이 수입됐고, 이것이 기반이 되어 우리나라 대중 음악의 싹이 틔운 곳이라는 점을 부평문화권이라는 지역담론을 올곧게 세우기 위한 것으로 받아들여진다.
그래서 부평문화권 형성에서 미군부대를 통해서 1950년대에서 1989년대에 수입된 영미 음악은 현대 부평지역을 연구하거나 살펴볼 때 놓쳐서는 안될 중요한 범주이기에 부평을 아는 지역사람들이 제안한 것이다.
곧 부평문화권 형성을 위한 제안한 사업으로 받아들여지면 정확하고 그렇게 가는 것이 올바른 방향이다.
이른바 역사 부평문화권에서 근대 부평문화권으로 이행하는데 워낙 단절점들이 많아서 그 간극을 메꾸는 작업으로서 부평에 미국 음악이 유입된 곡절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기제이기에 부평 대중음악을 담론으로 제기한 것이다.
이를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를 부평문화권 형성이라는 관점에서 보면 우선 순위가 나올 것이다.
그런데 한국대중음악자료원이 부평미군부대 안에 세워지게 되는 논리적 근거라고는 김정호가 부평 삼릉에서 음악활동을 한 것과 영미 팝음악을 받아낸 것에서 출발하고 있어서 우선 순위가 잘못되었거나 해야 할 중요한 일을 놓치고 있다.
부평지역에서 1950년대에서 1979년대 20년 동안 이뤄진 영미 팝음악 장르가 활발하게 행해 졌다는 것만으로 그것을 한국대중음악자료원을 인천 부평에 세우겠다는 것은 인문역사철학적 시선 부재로부터 나온 발상이다.
부평문화권 형성에서 부평지역에서 20년 동안 펼쳐진 음악 활동을 역사적 고증과 인문학적 평가 작업, 자료 발굴과 재해석 등이 없이 국비를 따내고 보자는 그리고 이름부터 먼저 선점하고 보자는 몰문화적이고 몰역사적인 것에 불과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떨쳐버릴 수가 없다.
그 느닷없임을 우선 걷어내는 진지한 연구가 선행되는 것이 우선이 아닌가? 그래야 그 자료원이 100년이 갈 것이 아닌가?
현재 부평문화권 형성과 , 부평지역사를 넉넉하게 하는 늘리지만 꼼꼼한 접근이 요구된다.
밥도 뜸을 들여야 맛이 나듯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