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일 석학 대담]김우창-가라타니 고진, 동아시아를 논하다(경향신문, 2015.09.30)

 

한국과 일본을 대표하는 두 지식인인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78)와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柄谷行人·74)이 만났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연세대 동아시아평화센터가 최근 주최한 국제학술대회 <동아시아 보편평화구상>에 가라타니가 참가하면서다. 두 지식인은
30여년전 미국에서 처음 만나 사상적 교류 등 친분을 이어오고 있다.
경향신문은 지난 22일 서울 종로구의 한 찻집에서 두 지식인의
대담을 마련했다. 2차대전 종전이자 해방 70년, 냉전 해체 20년에도 갈등과 긴장이 지속되는 동아시아 정세 등에 대한 이들의 생각을 듣고
자했다. 두 지식인의 대담은 2시간을 훌쩍 넘겨 이어졌다. 사회는 연세대 동아시아평화센터장 박명림 교수(52)가 맡았다.

 

 

 

 

박명림(이하
박)
=2차대전 종전 70주년을 맞아 동아시아가 격동하고 있다. 중국에서는 전승절 70주년 행사가 있었고, 일본에서는 격렬한 파동
끝에 안보법안이 통과됐다. 한반도에서도 남북 상호 포격과 지뢰도발 등 군사적 대치가 있었다. 종전 70주년 동아시아의 상황을 어떻게 봐야 할까. 


 

가라타니 고진(이하 고진)=전후 70년이라는 말이 있는 나라는 일본밖에 없다. 왜 그런가. 일본은
헌법 9조 때문에 전쟁을 할 수 없는 나라이기 때문이다. 최근 동아시아에 새로운 긴장이 돌고 있는 것은 기본적으로 일본 때문이다. 특히 아베
내각이 국가 간 적대감을 조성하는데 원인을 제공하고있다. 한국에서는 전후라는 말이 한국전쟁 후나 베트남전쟁 후로 불려져야한다고 생각된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과의 전쟁만 생각하고 있다. 중국도 역시 일본과의 전후 70년으로 한정돼
있다.


 

김우창(이하 김)=최근 긴장은 아베 내각 때문이기도 하지만 그것 뿐만이라고 할 수는 없다.
긴장이 발생하는 건 긴장을 만들 만한 힘이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한·중·일 세 나라가 어떤 성숙 단계에 이르렀다는 것이다. 세계에서 힘과
경제의 중심이 동아시아로 옮겨온다는 이야기가 나오는 것도 긴장과 함께 세 나라의 발전이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긴장과 성숙의 모순이 동시에
일어나고 있다는 뜻이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 대통령은 새로운 정세를 잘 파악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동아시아 상황을 구조적인 면과 정책적인 면으로 나누어 살펴봤으면 한다. 구조적인 면에서
볼 때 동아시아는 냉전 해체 20년이 지났는데 왜 점점 긴장이 고조되는가. 경제발전을 이루면 보통 역내가 통합과 화합으로 가는데 동아시아는 왜
거꾸로 민족주의와 군사긴장구조로 가는가. 이 역진현상을 어떻게 이해할 것이냐가 중요하다고
본다.


 

가라타니=동아시아 문제는 더 큰 문맥과 상황 안에서 봐야 한다. 세계적으로 헤게모니를 가진
국가가 없다. 미국도 경제적으로 말하면 헤게모니를 가진 국가가 아니다. 군사력으로도 그렇다. 핵은 갖고 있으되 병력이 부족하다. 지금 동아시아
문제는 근본적으로 누가 다음 헤게모니를 잡을 것인가에서 오는 대립관계라고 생각한다. 미국과 중국의 대립관계다. 지금 아시아 정세, 특히 일본과
중국의 대립은 거의 미국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라 볼 수 있다. 1990년대만 해도 일본에서는 중국과 우호적으로 지내자는 기류가 강했다.
경제발전에도 도움이 된다고 인식했고 정치계에서도 당시 자민당은 동아시아 공동체를 만드려고 강하게 추진했다. 멀리 다나카 가쿠에이로 거슬러
올라가고, 하토야마 유키오나 오자와 이치로로 대표되는 친중국 계열의 정치인들도 있었다. 그런 친중파들이 아베 내각이 들어서면서 우익으로 대체된
것이다. 


 

=칸트의 <영구평화론>을 보면 평화체제로 가는 몇 가지 방법이 있다. 그중
하나가 모두 하나의 나라가 되는 것인데 여러 문제가 있다. 그래서 칸트가 얘기하는 것이 연합체제다. 대등한 세력을 가진 나라들이 평화의 필요를
인식하고 같은 체제를 만들자는 노력이 있은 후에 그 나라들이 연합을 이루는 것이다. 대등하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군사력과 경제력을 두고 말한다.
지금 긴장이 생기는 것은 대등한 경제력과 군사력을 가진 나라들이 형성돼 가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중국이나 한국의 힘이 점점 커지고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보면 북한이 핵을 가지려 하는 것도 이해할 수 있다. 핵으로 대등한 힘을 갖추려 하는 것이다. 이렇게 대등한 관계가 되면 첫 단계에서
군사적 대결까지 포함해 긴장이 굉장히 커진다. 긴장관계와 군사적 대결에 들어가는 것이 이익이 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고 이를 풀어나가는 것이
문제다. 그 다음 단계가 긴장 속에서 서로 협상하는 단계고, 어느 정도 평화체제가 성립한 후 다음 단계인 비무장 협조체제로 가는 것이다. 이것은
미래의 이야기다. 지금은 대등한 힘의 관계로 발전하려는 여러 나라의 노력을 인정하는 한편 그것이 위험하다는 것 또한 인정해야 한다. 그 다음에
협정으로 가야 한다. 현실 프로세스가 복잡하다는 걸 인정해야 한다. 그걸 무시하고 평화와 이상만 말하면 현실과 맞지 않는다. 중국의 입장에서는
전승절이지만 일본으로서는 전패절이다. 서로 다른 입장을 이해하고 인정하면서 앞으로는 전승도 전패도 없는 사회로 가야한다는 단계가 될 수
있다.


 

=정책적인 면은 어떤가. 1990~2000년대만 해도 한·중·일에서 모두 동아시아 공동체를
향한 학술담론과 정책적 노력, 문화적 움직임이 강력했다. 장쩌민과 후진타오 시대 중국에서는 한중수교를 포함해 동아시아 교류와 협력을 부쩍
강조했고, 일본에서는 무라야마 도미이치 담화, 오부치 게이조(-김대중)의 한·일 공동선언, 고이즈미 준이치로(-김정일) 조·일 공동선언 등이
줄을 이었다. 한국도 김대중, 노무현 정권의 동북아 협력 구상과 주도 노력이 강력했다. 그러나 오늘날은 중국이 신흥대국으로 떠오르면서 이곳에
동아시아 담론이 사라졌다. 중국은 ‘신형대국관계’, ‘일대일로’로 대표되듯 동아시아를 벗어나려하고 있고, 일본도 동아시아 협력 정책 대신
미일동맹 강화론만 나온다. 놀랄 정도로 급격한 역진현상이다. 


 

가라타니=칸트는 영구 평화를 이야기하며
상업정신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익을 추구하는 이기심이 역설적으로 평화를 만들어 낸다고 했다. 그때만 해도 자본주의가 덜 발달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할 수 있었다고 본다. 당시는 군주가 곧 국가인 세계였고 이런 체제를 누르기 위해 상업정신이 필요하다고 봤다. 그리고 국가가 군주인
체제에서 공화국 체제가 되면 주권자인 국민 의지에 따라 전쟁을 하지 않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상업자본주의가 철저히 발달하면 이런
논리는 통용되지 않는다. 이제 상업정신 그 자체가 전쟁을 만드는 변화가 일어났다. <영구평화론>이전의 칸트 논문을 보면 전쟁이 평화를
만들고 인간의 공격성이 오히려 평화를 만든다고 했는데 현재 상황은 그 글을 보는 것이 더 적합하다고 본다. 요즘 정세를 만드는 것은 국가가
아니라 자본이다. 자본은 존속을 위해 무엇이든 한다. 중국은 경제적으로 고도로 발전했지만 그렇게 때문에 더 위험해질 가능성이 높다. 중국의
자본은 지금 아프리카까지도 침투해 있다. 나는 이 상황을 신제국주의 현상이라고 본다. 


 

=김대중
대통령이 추진한 햇볕정책에 대해, 나는 햇볕정책이 필요한 것도 맞고 그것이 비현실적이라는 얘기도 맞다고 생각한다. 당장은 햇볕정책이 먹히는
것처럼 보여도 국가가 가지고 있는 군사력이나 다른 힘을 생각하면 쉽지 않다. 주권이라는 말 자체가 군사력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권력을 말하지
않나. 권력 가진 통치자들을 어떻게 순화할 수 있느냐가 동반되어야지 햇볕만 가지고는 안된다는 이야기다. 과거 동아시아 공동체 의식이 강했다고
하는데 그것도 현실여건과 의식 사이를 어떻게 연결하느냐에 대한 과정이 있어야 한다. 그런 생각 없으면 현실적인 결과가 나오지 않는다. 지금
동아시아에서 긴장은 강해지고 있지만 한·중·일의 무역관계는 더 밀접해졌다. 인식의 차원에서는 멀어졌을지 모르지만 현실적 관계는 깊어졌다. 자본과
힘이라는 두 가지를 놓고 볼 때 자본은 유연하지만 힘은 중립적이면서도 위험하다. 좋게 사용하면 좋고, 나쁘게 사용하면 나쁜 불과 같은 것이다.
불을 어떻게 순화시키느냐가 중요하다. 이상을 바탕으로 이를 어떻게 바로잡아야 하는가이다. 그리고 자본주의고 문제 많은 건 사실이지만 그 나름으로
인간소망을 표현하고 있다. 아담 스미스가 도덕철학자였다는 것도 알 필요가 있다. 아담 스미스가 말한 ‘보이지 않는 손’은 시장인 동시에 신이다.
각자가 알아서 해나가되 그걸 조정하는 것은 신이라는 이야기다. 그런데 신에 대한 이야기는 없이 시장만
강조한다.


 

가라타니=‘이기심이 평화를 만들어낸다’는 게 아담 스미스와 칸트의 접점일 것이다. 아담
스미스는 사회복지를 강조했다. 그 당시에 그걸 알았기 때문에 아담 스미스를 도덕가라고 할 수 있다. 현재의 신자유주의는 아담 스미스 철학이
아니다. 사회적 다윈주의다. 제국주의 맥락에서 이런 생각이 인기를 끌었다. 자본주의의 좋은 점도 있다고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먼
미래의 일일 지도 모르겠지만 세계동시혁명이 실현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혁명으로 세계를 바꾼다는
건 실상을 모르는 말이다. 성공한 예가 없다. 소련 혁명도 그렇고 청교도 혁명도 그렇고. 혁명을 한다며 하나의 아이디어를 강제하는 건 독재다. 


 

가라타니=그런 뜻이 아니라 한 나라에서 무슨 일이 있으면 다른 나라에도 영향이 있기 때문에 동시에
일어난다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네그리가 이야기하는 것과는 다르다. 네그리나 하트는 다중세계혁명을 이야기하지만 내가 이야기하는 것은 유엔 같은
하나의 기구를 통해 실현되는 동시성이다. 이 문제를 굉장히 구체적으로 생각하고 있다.


 

=말씀들
사이에 차이와 긴자이 느껴진다. 오늘의 상황에서 동아시아 각국이 구체적으로는 무엇을 할 수
있을까?


 

가라타니=전체적으로 동아시아보다 나는 일본이 어떻게 해야하는지 말하고 싶다. 일본은 남북
분단문제는 없지만 오키나와 문제가 있다. 일본 군사기지는 거의 다 오키나와에 있다. 전후 부담을 오키나와 사람들이 짊어지고 있는 셈이다.
일본문제는 곧 오키나와 문제다. 오키나와가 독립국가가 되어서 전쟁 포기를 실현하는 것이다. 오키나와가 독립국이 되면 그 의미는 미국이 쫓겨나는
것이다. 그런 가능성이 하나 있고. 오키나와가 독립국가가 돼서 헌법9조를 실현하면 정세가 굉장히 변할
것이다.


 

=하토야마 유키오 전총리는 동아시아 평화협의체를 만들어 오키나와에 본부를 두자고 했다.
그러나 방금 말씀한 오키나와 얘기는 앞을 내다보는데 있어 중요하지만 상당히 먼 미래의 이야기인 것 같다. 


 

=사실 가라타니 선생은 오키나와는 마땅히 독립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해오셨다. 다른 질문을 하겠다.
민족주의의 분출, 영토갈등의 상존, 과거사 문제 악화, 군사갈등의 고조가 지속되는 상황에서 동아시아는 과연 어떤 정신적 공통점이나
역사·문화·언어·문자·인종의 유사성을 갖고 지역통합노력이라든가 동질적 정체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가.


 

가라타니=지난 2006년에 한국에서 만났을 때 김우창 선생이 유교 관련 강연을 했다. 그때
예로 들었던 게 1600년대 조선통신사가 일본으로 가면서 “일본은 유교를 공부하고 있는 나라”라는 평가했다는 것이다. 1600년대 도쿠가와
막부가 들어서기 이전까지만 해도 일본의 무사들은 칼만 쓸 줄 아는 무식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도쿠가와 시대부터 무사들도 책을 읽고 공부를 하게
됐다. 예악을 공부하고 더 이상 칼을 뽑지 않게 됐다. 유럽에서도 유사한 예를 찾을 수 있다. 유럽 기사들도 문명화하면서 폭력적인 성격이
줄어들었다. 


 

=맞다. 노베르트 엘리아스가 쓴 <문명화 과정>에 그런 이야기들이 나온다. 


 

가라타니=유교 사상은 중국 전국 시대의 평화사상이다. 하지만 요즘 같은 때에 김우창 선생이 한국에서
유교를 이야기하면 보수반동이라는 말을 듣지 않을까.(웃음) 일본에서도 마찬가지다. 아무튼 유교는 중국의 평화사상이라 볼 수 있는데 중국은 고대에
제국이 되기 전까지 아주 오랫동안 원리적이고 원칙적인 사상을 추구하는 과정이 있었다. 제국이 전쟁이라는 폭력만으로 이뤄질 수는 없었다. 원리가
되는 사상이 필요했다. 이 과정 안에서 공자나 노자 같은 사상가를 봐야한다. 우리는 평화를 말할 때 보통 칸트를 이야기하지만 칸트는 서양적
맥락에서 평화를 얘기한다. 


 

=유교가 전국시대의 평화사상이라는 걸 봐야한다. 맥락을 빼면 의미가
없다. 유교도 재해석돼야 하고 반성할 필요가 있다. 유교는 너무 서열질서를 강조한다. 하늘은 높고 인간은 낮다고 한다. ‘예’ 본래 정신으로
돌아가야 한다. 예라는 것은 원래 종교에서 나온 말이다. 우주적 질서 앞에 경외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생명존중이나 환경, 생태 철학으로
연결되는 것이다. 슈바이처가 말한 생명에 대한 존경심이나 독일 환경철학자 한스 요나스가 말한 존재 앞에서의 외경심 같은 것들이다. 칸트식으로
이야기하면 “내가 행동하는 것이 모든 생명을 위한 환경을 유지하는데 양립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것 없이 유교만 가지고
이야기하면 보수반동으로 가기 쉽다. 유교를 민주주의나 다른 인간 정신의 문제와 연결해야 한다. 평화에 대한 소망은 세계 각지에 있다. 미국
인디언 이로코이족에서도 찾아볼 수 있고 일본에서도 니시다 기타로가 쓴 <선의 연구>와 같은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가라타니=서양에서 평화사상은 신의 나라, 기독교와 연결된다. 다시 말하면 초자아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고 수치심을 알게 되는게 중요하다는 말이다. 화가 난다고 금방 칼을 뽑아드는 행동은 수치스러운 일이라는 것이다. 이런 감각을 어떻게
만들어야 하는지 프로이트는 말하고 있다. 여기서 서양사상과 유교는 분노를 어떻게 다루느냐로 접목된다. 문명 사회에서 분노를 어떻게 관리할
것인가, 야만적 방법으로 복수하고 대응하는 것은 이상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즉 일본이 야만적으로 전쟁을 하려든다고 해서 한국도 똑같이 야만적으로
대응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김우창 고려대 명예교수와 일본의 사상가 가라타니 고진, 박명림 연세대 교수(왼쪽부터)가 서울 종로구 한 찻집에서 동아시아 정세 등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역사를 보면
외려 만리장성 내부, 즉 유교가 통치하던 관내 지역이 관외 지역보다 전쟁이 더 많았다. 유교가, 관념이 아닌 현실에서, 평화적이라는 주장은
상당한 논증을 필요로 하는 해석이라고 본다. 나는 반대로 보는 편이다. 중국의 거시적인 근대화와 건국, 개혁개방과정은 한마디로 탈유교화라고 할
수 있다. 이제 중국은 하나의 제국·문명·체제이자 질서다. 유교가 필요 없는 상황이다. 그런데 왜 경제발전 이후에 유교와 공자를 다시 찾고
민족주의나 국수주의가 급격히 강해지는 것인가. 보편주의가 아니라 왜 특수주의로 일탈하는 것인가. 유교를 긍정하면서 세계동시혁명을 말하는 것은
모순 아닌가?


 

가라타니=중국은 혁명 후 몇 단계를 거쳐 발전해왔다. 지금 중국은 헤게모니국가로
움직이려 한다고 본다. 중국인들 인식 속에는 제3세계 리더였다는 과거에 대한 자각이 있다고 여겨진다. 그러나 지금 제3세계는 없다. 결국 중국
스스로 자본을 가지고 밖으로 나가야하는 상황이다. 과거 중국은 모두 빈곤해서 평등했다. 하지만 사회주의 자체가 빈곤이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덩샤오핑 같은 이는 부자가 돼서 사회주의를 하자고 생각했다고 본다. 지금 공산당 안에서는 과거 문화대혁명과 다른 새로운 혁명을 다시 한번 하자는
생각이 있다.


 

=중국에서 왜 유교가 나오는 지는 사실 잘 모르겠다. 다만 슈무엘 아이젠슈타트 같은
학자는 이데올로기는 권력을 지탱하는 수단이라고 했다. 이데올로기가 권력과 연결되기 시작하면 도그마로 바뀐다. 인간해방의 수단이었던 것이 권력을
지지하고 인간을 억제하는 수단으로 변한다. 마르크스주의도 그렇고 유교도 그랬다. 자본주의도 사회주의도 다 억압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다. 그렇다고
이데올로기가 권력과 연결되는 것을 부정적으로만 볼 수도 없다. 사회를 바꾸려면 권력이 있어야 한다. 역사의 모순적인 변증법이다. 사상도 체제도
갱신해 나가야 한다. 간단한 답이 없다. 결국 불을 어떻게 다루느냐의 문제다. 두 측면을 다 인정하고 보다 나은 사회를 생각해야 한다. 그런
생각은 모든 사람들의 마음에 내재돼 있다. 그것이 죽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


 

=조금 논쟁적인
질문을 드리겠다. 중국이 거꾸로 가고 있는데 미국이 만약 동아시아에서 물러난다면 어떤 방식으로 평화를 유지할 수 있을까. 미국이 나가면 일본은
평화헌법을 개정하고 더욱더 무장하려할 것이고 더 극우화하지 않을까. 미국이 나가면 미중대립이 격화할 뿐 아니라, 미국의 견제로 균형을 유지해오면
중국·일본·러시아의 한반도문제 개입으로 인해 한반도도 더욱 복잡해 질 것이라고
보는데.


 

가라타니=미국이 나가면 그 자체로 평화가 오는 것 아닌가.(웃음) 미국이 나가면 중국이
일본을 지금처럼 압박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일본의 극우화도 미국이 허용하지 않을 것이다. 중국도 완전한 자유주의 체제가 되지 안되면
헤게모니 국가는 될 수가 없다. 차라리 인도가 가능성이 있다. 인도는 영국 지배하에 있었기 때문에 영어권에 속한다. 미국의 친척 같은 나라다.
중국과 인도가 대립하면 모두 인도를 옹호할 것이다. 중국이 아무리 군사력을 키워도 헤게모니 국가는 될 수 없다. 헤게모니는 군사력으로 되는 것이
아니다. 네덜란드, 영국, 미국 등 이제까지 모든 헤게모니 국가는 자유주의 국가였다. 중국도 자유주의 국가가 되지 않으면 헤게모니를 잡을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중국이 어떻게 될 지에 대해서도 생각은 해야하지만 그게 꼭 생각대로
되지는 않을 것이다. 사람 사는 세상이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과거에 집착해 미래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문제인 것처럼 미래만 너무 생각하는
것도 오늘 현실의 문제를 해결하는데 문제가 된다. 오늘을 생각해야 한다. 미래를 생각하는 것은 예언자들이 할 일이고 우리는 그때그때 일어나는
일에 대처하고 현실을 해결해야 한다. 현실과 정신적 가치라는 모순을 생각하면서 현실에 대응해야 한다. 그 점에서 인도 이야기를 하자면 인도는
헤게모니 국가가 될 수 없을 거다. 모양은 한 나라지만 실상은 한 나라가 아니다.


 

가라타니=지금의
인도가 아니라 50년 후의 인도를 이야기하는 것이다.


 

=인도는 근대국가가 아니다. 가보고 읽어보고
하면 안다. 


 

=지금 우리에겐 인도문제보다 한반도문제가 더 시급해 보인다.(웃음) 끝으로 한반도
문제를 이야기해보자. 세계 최대 병력이 최고의 무기로 무장한 채 가장 가깝게 대치하고 있다. 3대 세습이라는 반문명적인 일도 벌어지고 있다.
막강한 미군이 주둔하고 있기도 하다. 냉전이 끝난지 20년이 지났지만 여전히 군사적 긴장이 높고, 세계의 온갖 모순이 집중돼 있는 지역이다.
한반도로부터 동아시아와 세계가 평화로워지려면 한국인들은 어떻게 해야 하나.


 

가라타니=솔직히 한국문제에
대답할 능력은 없다. 다만 남북한 모두 늘 일본과의 관계를 두고만 생각하려는 틀이 있다. 일본을 공격하면 민족주의적인 만족이 있을 수는 있다.
그러나 만일 내전이 일어난다면 민족주의적 욕망이 어떻게 정리될 수 있겠는가. 한국인들에게 트라우마로 남아 있는 것은 한국전쟁이라고 생각한다.
이건 서독과 동독의 문제와는 비교할 수가 없다. 동독과 서독은 전쟁을 안했다. 그래서 재결합과 통일을 큰 충돌 없이 할 수 있었다. 남북은 그리
쉽게 해결할 수 없다. 이런 문제의 특수함이 불변성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평화회의에서도 논의되었듯이 전후 70년 문제는 남북문제가
저변에 있다고 생각한다. 지금 정세는 1890년대와 닮았다고 본다. 당시 조선 권력층 내부에서 권력 다툼이나 그와 연계된 일본 등과의 관계가
지금과 유사하다. 


 

=얼마전 영국 가디언에서 보도했는데 한 업체가 화성에 이민갈 사람을 모았더니
20만명 이상 지원했다고 한다. 한국도 화성 이민간다고 하면 지원자가 많을 거다. 남북문제 해결하려면 현실을 분명히 인식하고 동시에 깊은
인간적인 가치를 인정하해야 한다. 둘 사이를 어떻게 연결할 것인가를 이데올로기가 아니라 합리성에 기초해서 계속 풀어나가야 한다. 3대세습 문제도
그렇다. 좋고 나쁘고를 떠나 현실을 인정하고 어떻게 풀어나갈 지를 생각해야 한다. 이상에서도 좋은 게 있고 나쁜 게 있는데 끊임없이 반성적으로
생각해야 한다. 그걸 다듬어 나가면서 현실을 냉정하게 봐야한다. 

 

 

=오늘의 특별대담에서 한국과 동아시아와 세계까지, 그리고
이데올로기부터 현실문제까지 넓고 깊게 짚어주셨다. 깊이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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