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y 김중호 객원기자
논어의 위령공편 39장에 이런 말이 나온다.
‘뜻이 같지 않으면 함께 일을 도모하지 못한다'(道不同不相爲謀)
직역하면, ‘도가 같지 않으면, 서로 도모하지 않는다’가 된다.
음식은 더 말할 필요가 없다. ‘입맛이 다르면 함께 먹을 수 없다.’로 바로 응용된다.
필자와 같이 사는 여편네는 육고기를 싫어해서 특히 물에 빠진 육고기 종류의 음식을 더러운 음식으로 여겨 평생을 입에 대지 않고 살고 있다.
필자가 팔자가 기박해 음식 궁합이 맞지 않는 사람을 만나 집에서 이런 종류의 음식을 구경하지 못하는 것은 불행이라면 큰 불행에 속할 터인데, 그래도 크게 내색하지 않고 마음 한 켠에 한탄의 감정을 쌓고 살아오고 있었던 바, 이 여편이 최근 들어 발병한 몸이 되어 치병의 일환으로 밀가루 종류 또한 거두절미하고 거절하니, 나로선 그나마 함께 먹을 음식이 없어졌다.
그래도 집이라고 한쪽 구석에서 숨이나마 쉬고 살아있으려면, 뭐라도 구색을 맞추고 비위 또한 맞춰야겠기에, 남들이 보면 내가 뭐 대단한 건강주의자처럼 인식되어 밖에서 식사도 잘 하지 않는 괴습성을 지닌 자로 알 수도 있을 것이다.
웬 일로 막국수를 먹으러 가자는 날이 가물에 콩나드키 있다. 오늘이 그날인가 보다.
국수집에 당도해보니, 여긴 내가 거의 삼 년을 간판을 보며 지나다녔던 곳이 아닌가. 그땐 불꺼진 이층집 창문처럼 어둑하고 고요한 집이었다. 부개여고 앞길을 부평동 쪽으로 타고 내려오면 부개동 사거리 목에 있는 집으로 쉽게 눈에 띄는 식당이라 단박에 기억을 해냈는데, 오늘처럼 이렇게 해가 뜨거운 날, 밖에서 줄을 서야 할 정도로 맛있는 집이었나 싶은 생각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과거 7,80년대에 ‘식도락’이라는 말이 있었다. 그런 사람을 ‘식도락가’라고 불러 맛의 세계에 존재하는 한량쯤으로 여겼던 그런 시절이 성냥불 사그라들 듯 자취를 감추고, 맛집, 맛 컴럼니스트라는 말이 새로 등장하여 고상한 권위를 자아냈던 한자말들이 죄다 사라진 그 자리에 우리말과 서양말이 들어와 쓰이고 있다.
세상에 같은 뜻을 가진 말은 없듯, 어째 식도락가가 맛블로거나 맛집 유튜버가 될 수 있겠는가. 나는 그런 종류의 한량이 아니다. 음식은 정직한 밥이어야 한다고 생각하는 그냥 ‘식사쟁이’다. 하여튼, 주차를 안내하는 할배들의 지도에 이끌려 여편이 얼른 차에서 튀어나가 점포 안으로 달려 들어갔고 이내 19번 번호표를 받아 들고 나왔다.
필자는 줄 서는 걸 미칠듯이 싫어한다. 그래서 줄 서는 음식은 안 먹었다.
우리가 무슨 소가? 여물통에 목길게 늘여놓고 줄서서 주인 놈이 짚세기 부어줄 때까지 눈만 꿈쩍거리며 멀거니 혀만 훑고 빨고 있어야 한단 말인가. 그래, 요즘은 어딜 가나 줄을 서니, 이건 질서를 잘 지킨다는 도덕관념을 넘어서, 이걸 못하면 어디 가서 내 돈 내고도 한 끼 국물도 못 얻어먹으니, 말세다, 말세.
안에서 마이크로 번호를 부른다. 살펴보니 건물 벽에 작은 스피커가 붙어 있다. 그래도 금방 금방 앞 번호들이 불려 들어가고, 우리 번호가 불렸다.
“아싸, 드가자!”
가게 입구에서 돈복 있게 생긴 심술궂은 관상을 가진 주인장이 번호표를 돌려받고 종업원이 몇 명이냐고 묻고 자리로 안내한다. 식당 안은 그냥 그런 식당이다. 말 그대로, 특징이 하나도 없는 일반 음식점.
물 하나, 회 하나, 메밀전 하나!
“사실 나 여기 와서 먹어 봤거든…”
여편이 뭐라고 주접을 떤다. 큰놈하고 이미 와 봤단다. 이런 우라질, 그럼 난? 세컨이가, 깍뚜기가?
“친구들이 소개해줘서 먹어봤는데 그렇게 맛이 있다고 입에 달고 말을 하데…”
“뭐여? 내가 맛있다고 한 건 깡그리 제끼고 살면서 아들놈 추천은 가슴에 새기며 사는 거냐?”
역시 말세다, 아들놈만을 주구장창 하늘로 떠받들고 살고 있는 여편이다. 한숨이 절로 나온다.
상위에 그릇이 날라왔다. 동구의 화평동 세숫대야 만큼은 크지 않지만 여기도 웬만한 세숫대야는 된다.
“어때 맛나지?”
“젓가락으로 집지도 않았다!”
“이거 먹어봐!”
2천원 더 비싼 회냉면을 시킨 여편이 면발과 코다리를 함께 말아서 코앞에 밀어준다. 사실 회냉면을 시킬 때마다, 면 위에 올라가 있는 광어나 우럭을 생각하지만, 언제나 명태 코다리다. 왜 회도 아닌 걸 회냉면이라고 이름을 붙였을까? 우리나라는 생회 문화가 아니라 숙회 문화라 그렇다고 막연하게 생각하고 일단 접어둔다.
“아, 내 거 좀 먹자고, 내 거!”
여편이 미안했던지 젓가락을 내리며 내 눈치를 살핀다. 나도 사실 좀 미안하다. 해서, 시원하게 육수 좀 마셔보라고 그릇을 밀어 내 보인다. 절대로 여편은 육수를 그릇째 마시는 법이 없다는 걸 나는 잘 알고 있다. 내가 왜 또 이런 짓을? 내 팔자는 영원한 ‘을’인 갑다.
‘아, 맛이 달고 시다. 달고 시고 달고 신데, 깨소금이 한껏 뿌려져 있어 고소한 맛이 틈틈이 확 올라오기도 한다. 메밀 면발은 밀가루가 많이 섞여 오돌오돌 찰기가 있다.’
그래저래 먹을만한 집이다. 별점 다섯 개 만점에 3개다.
내 별점은 3개부터가 맛있는 집인데, 한 개나 두 개의 집은 그냥 스쳐 지나가 기억에 없는 집들이고 세 개부터가 두 번 세 번 가도 되는 집으로 정했다. 내가 국수를 좋아해서 세 끼 밥은 안 먹어도 국수는 먹는, 일명 ‘국수쟁이’로 살아왔다.
막국수로 말하자면, 막국수의 원조격인 춘천 막국수도 맛있다는 데는 여럿 가봤지만 차이점을 발견하지 못했고, 봉평의 이효석거리에서 해주는 막국수도 그냥 그랬고, 오히려 이효석거리에 부녀회가 나와서 해주는 메밀전이 진짜 맛있었던 기억이 난다. 뭐든 장사로 팔려고 하면 맛이 없다. 천서리 막국수가 나름 유명한데, 이 동네도 그냥 그렇다. 왜 막국수들이 실패하냐 하면, 양념장 소스를 너무 세게 만들어서 강하고 신맛이 주를 이루고, 그렇게 맛이 나야 막국수인 줄 잘 못 알고 있어서 그렇다. 막국수는 자고로 슴슴해야 한다.
백석의 ‘국수’라는 시를 보자.
아, 이 반가운 것은 무엇인가
이 히스무레하고 부드럽고 수수하고 슴슴한 것은 무엇인가
겨울밤 찡하니 익은 동치미국을 좋아하고 얼얼한 고춧가루를 좋아하고 싱싱한 산꿩의 고기를 좋아하고
그리고 담배 내음새 탄수 내음새 또 수육을 삶는 육수국 내음새 자욱한 더북한 삿방 쩔쩔 끓는 아랫목을 좋아하는 이것은 무엇인가
백석의 고향이 평안북도 정주인 것을 보면, 관서쪽의 국수문화였을 것으로 짐작된다. 그래서 평양냉면이 동치미 베이스이면서 메밀면이 주인 것으로 볼 때, 강원도 지방의 메밀국수 역시 슴슴한 베이스여야 하지 않을까. 냉면을 비롯한 찬 국수종류들이 모두 11월 한풍이 불던 때의 음식인 것을 상기해보면, 이냉치냉했던 조상들의 강인한 극기정신을 알아차릴 수 있다.
물론, 비빔장을 양념장으로 얹어서 먹을 수도 있겠다. 그런, 메밀의 맛을 제대로 보려면, 강한 양념에 툭툭 끊어지는 면의 그 속살이 묻혀버리는 불행한 사태가 발생하게 되는 것이다.
여태 살면서 내가 먹어본 막국수 중에 이런 슴슴한 맛에 가장 가까운 데가 안산의 ‘화정리’ 막국수였다.
입맛은 습관과도 같은 것이어서, 한번 들이면 좀처럼 바꾸기가 힘들다. 처음 입에 뭣을 갖다 댔냐가 평생 입맛을 좌우한다. 그래서 어머니의 손맛이 고향의 맛이 될 수 밖에 없다.
여편이 말아 올린 비빔 막국수를 다시 받아먹으며, 맛은 있다만, 양념 먹으러 온 게 아닌데… 하는 생각을 지울 수 없다.
입맛이 다르면, 찾아가는 식당도 달라야 하거늘, 늘 같이 다니며 속으로 욕을 하고 다시는 같이 안 온다며 또 오는 이것은 무엇인가, 도대체 도부동하더라도 가상위모(道不同 可相爲謀)하게 만드는 이 존재는 무엇이란 말인가.
여름이다. 시원한 국수의 계절이다. 앞서 말한 바와 같이 원래 찬 동치미에 국수를 말아먹는 한겨울 풍습이었다. 선득한 찬바람이 목 깃을 스칠 때 차가운 동치미 국물을 들이켜 마시는 장면을 떠올려 보시라. 등골까지 오그라들 만큼 심장이 쫄깃해 지지 않나? 저 변방 북쪽에 사는 동포들의 강인한 정신을 기려보는 이 상상 앞에는 더 이상 여름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