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발행인
(각주)2016년도에 쓴 글인데, 지금도 여전히 유효하다는 생각이어서 다시 올린다.
나 스스로 묻는다. 나는 인천사람인가? 누군가 저에게 “인천 사람인가?”하고 묻는다면 “예. 맞습니다. 전 인천사람입니다.”라고 1~2초 만에 답을 못하고 이러쿵저러쿵 하는 말로 시간을 허비할 것이 분명하다.
인천살이 7년째인 사람에게 ‘인천사람’이라고 지칭하는 것이 가당치도 않을 수 있다는 생각이 요즘 들어 부쩍 드는 이유가 뭘까 고민해 본다.
정말 내가 인천에 대해서 100만분 1이라도 알고 있는가, 하는 자괴감이 들었다고 하는 것이 솔직한 심정일 것이다. 나처럼 인천살이 7년째에 불과하지만 인천의 역사에 대해 관심을 가지고 공부하는 축에 드는 사람들에게서 오는 통과의례와 같은 것이 처음에 찾아오는 것은 어쩌면 나쁜 습관 -인천을 다른 도시와 비교하는-이 아닐까 싶다.
나 또한 이런 통과의례는 겪었다. 그리고 지금도 극복하지 못하고 있다. 인천에 없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이 우선적으로 든 간단한 비교 방식으로서 인천을 바라보기가 그것이다.
다만, 인천살이 7년째에 접어들면서 나 스스로 인천이 만만한 도시가 아님을 자각하면서 앞서 다른 도시와 단순 비교해서 인천을 바라보는 행위와 시선, 그리고 내놓은 말들에 대해서 후회스럽고 너무 얄팍했다는 자괴감이 들었다.
요즘 들어 어느 자리에 가면, 인천에 대해서 이야기할 때면 이젠 듣는데 치중하는 데서 7년째 인천살이에 접어든 초보 인천사람의 예의를 차리는 모습을 발견하고는 제 스스로 놀라고 한다.
인천, 그리고 인천 사람은 어떤 형태이며, 어떤 사람들인가 하는 것이 좀체 하나의 의미망으로 잡히지 않는다는 데에서부터 나의 반성과 고민의 시작됐다고 고백할 수 있다.
인천은 어떤 도시인가, 그리고 왜 타자인들에게 텃세를 부리지 않은 것인가, 아니면 일부러 텃세를 부리지 않는 것인가, 하는 의문을 던지게 된다.
인천은 항구도시인가, 하고 물으면, 인천은 저만치 항구도시만은 아니라고 도망가 있는 형국이다. 그래서 무지개와 같은 도시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 다양한 출신들이 망라해서 살고 있기에 무지개 같은 도시라는 이미지가 나의 머릿속에서 내내 떠나지 않는 것인 줄 모를 일이다.
무지개 도시는 인천. 사실 이 의미는 인천을 의미 규정하기 힘들다는 표현에 다름 아니라는 점에서도 너무나 추상적 개념이다.
그럼, 인천은 다양한 지역에서 온 사람들로 구성된 도시라고 규정하는 것이 마땅한 것인가 하는 질문에도 딱히 “맞다”라고 규정하기 힘든 요소들을 인천은 많이 품고 있다.
인천의 토박이들이 터줏대감처럼 원도심에 자리잡고 있고, 강화도의 역사, 그리고 근대를 압축적으로 간직하고 있는 부평의 시간을 현재의 인천이 세 축의 시간을 여전히 무리 없이 떠받치고 있기 떄문이다. 그런 점에서 인천은 다양한 지역의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움직이는 무지개 도시라기보다는 인천이 오랫동안 간직한 시계가 째깍째깍 여전히 돌아가고 있다고 하는 것이 매우 정확한 표현이다.
이런 점에 도달하게 되면, 인천을 바라보는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곧 인천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인천의 세 가지 시간이 작동했던 원리(방법)들을 찾아내는 노력들이 우선적으로 시작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곧, 인천사람이 되기 위해서는 ‘충청 향우회’니 ‘호남 향우회’니 하는 것들에 기웃거리면서 인천 사람 되기와 무관한 지역 간 비교하기와 같은 인천이 배제되는 형태와는 과감한 거리 두기로부터 시작돼야 한다고 본다.
인천에서 태어났다고 인천 사람은 아니다. 인천의 오래된 시간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궁금해 하는 노력들이 인천 사람이 되는 가장 필요한 덕목이 아닌가 싶다. 곰이 동굴에서 견뎌서 사람이 된 것처럼, 인천의 시간을 배우는 노력들로부터 인천 사람이 되는 가장 빠른 지름길이다.
흔히 요즘 인천을 ‘혼종과 잡종의 도시’라고 이야기를 한다. 이른바 인천 토박이들이 인천을 이런 식으로 표현하는 것에는 동의할 수 있다. 그러나 인천의 역사에 대한 깊은 천착이 없는 가운데 나온 표현이라면 삼가야 할 것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잡종의 도시’와 ‘혼종의 도시’라는 말은 인천을 정확하게 본 표현은 아니다. 왜냐하면 인천을 움직이는 큰 시간이 여전히 인천이 걸어온 역사 속에서 살아 있고 작동하고 있기에 그렇다.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인천사람이 되기 위해 필요한 덕목과 태도에는 관심이 희박한 채, 그 전에 이전해 온 지방색을 인천의 긴 역사를 간직한 도시에 투영해 보려는 욕망의 표현이 잡종과 혼종으로 드러난 것에 불과하다는 생각이다.
인천의 몇몇 이른바 ‘토박이’들이 인천에 대해서 제3자적인 관점에서 인천을 바라보지 않기에 별 할 말이 없다는 표현을 한다. 그래서 이러쿵저러쿵 나서지 않는다고 한다. 그만큼 경제적으로 지금도 안정적이라는 말에 다름 아니다.
그래서 인천토박이들의 발언권이 현재 인천에서는 그리 크지 않거나, 발언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걸 달리 표현하자면 정체되어 있다는 표현이 맞을 성 싶다. 그래서 외지에서 온 사람들이 인천의 정치, 경제, 문화 전반에 나서는 기회가 역설적으로 주어졌다는 분석이 나오는 것이다.
또한, 이 지점에서 인천사람이라면, 이런 질문을 던져야 한다. 왜 인천 토박이들은 나서서 말과 행동을 하지 않는가? 이 질문을 던지면서 그 곡절에 다가서야 인천 사람이 되는 것이다.
왜 인천 토박이 사람들은 말과 행동을 삼가는가? 이 물음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인천의 근대 역사를 찬찬히 지켜보면 찾을 수 있다.
인천 출신 노학자가 한 말에 열쇠가 있다. “인천에서 인물나면 겪이다.”라는 말이다. 노학자가 말했다. 남조선노동당을 지휘한 인천 출신 이승엽 북한에서 처형, 강화 출신 조봉암의 사형, 정치인 장면의 갑작스런 죽음 등을 예를 들었다.
인천의 근대 역사 속에서 곡절이 많았던 도시라는 점에서 인천 토박이 사람들이 말과 행동을 삼간 것은 경제적 안정성에 비롯된 것이 아니라, 역사적 생채기가 여전히 토박이들의 경험 속에 남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 때 인천사람이 될 첫 단추를 끼울 수 있다고 생각된다.
최근 의열단 단장 약산 김원봉을 소재로 한 영화의 첫 장면이 떠오른다. 상해 임시정부의 김구와 만나기 직전 약산에게 “당신은 누구냐”고 묻자, 약산 김원봉은 즉각 답한다. “나 밀양 사람 김원봉이요”
인천살이 7년째 제가 “당신 누구요”라는 질문에 머뭇거림 없이 “인천사람”이라고 답할 수 있을지 여전히 지금도 이 시간도 두렵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