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행인] 天刑의 시인 한하운 헌양 사업에 앞서서

글쓴이: 이장열 대표기자

문학적 평가와 부평과의 시간성 확보 선행되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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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5년 2월 28일 오전 10시 45분 인천시 북구(현재 부평구) 십정동 자택에서 57세로 생을 마감한 보리피리로 유명한 나병의 한하운 시인을 기리는 사업이 부평구가 직접 나서서 시인 헌양 사업이 본격화되고 있다.

최근 부평구가 시인 한하운의 헌양 사업을 위해 두 팔을 걷어 부쳤다. 지역의 구청이 나서서 시인을 헌양하는 일은 사실 드문 일인데, 구청장의 강한 의지가 없다면 사실 별로 구민들에게는 표를 얻을 수 있는 사업이 아니기에 신경도 쓰지 않을 일이기에 그렇다는 뜻이다.

그런 점에서 부평구청장이 시인 한하운에 대한 남다른 관심과 애정이 없다면 진행하기 힘들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한하운 시인이 살아생전에 현재 부평구청장과 개인적인 인연이 있지 않을까 하는 데에까지 멀리 가게 된다.

몇 년 전에는 현재 부평구청장의 큰 도움으로 고 박영근 시인의 시비가 신트리공원에 세워질 수 있었다. 박영근 시인의 추모행사에도 빠짐없이 현재 부평구청장이 참석해 시인을 애도하는 말을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구청장의 문학에 대한 관심도 매우 높다는 데에는 이의가 없을 성 싶다.

문화에 대한 관심과 애정이 깊다는 것은 구청장으로서 흠결이 될 일이 아니라, 자랑할 만한 일이다. 문화에 대한 관심이 결국 행정의 신뢰성을 확보하고 구민들의 마음을 얻을 낼 수 있는 멋스러운 수단이라는 것을 아는 몇 안되는 구청장이라는 사실은 문화계에 몸 담고 있는 사람들에게는 회자되는 일이다.

한하운 시인의 헌양도 마찬가지로 구청장이 나서서 하는 일은 의외이고 자랑스러운 일이다. 부평으로 들어와 살고 십정동에서 생을 마감한 한하운 시인을 부평이 아니면 누가 그를 기억하고 추억할 것인가 하는 데에는 의문의 여지가 없다.

시인의 헌양 사업을 위해서는 사전에 짚고 가야 할 것이 많다. 개인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헌양 사업이 아니라, 관이 나서서 국민들의 세금으로 일을 진행하는 일이라면 좀더 섬세하게 짚는 과정이 선행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우선 시인 한하운에 대해서는 짚어야 할 사항이 있다. 개인적인 것과 공적이 영역에서 그것은 왜 없을까 하는 것이다.

우선, 시인 한하운(본디이름 한태영 1919~1975))이 죽고 나서, 그의 무덤이 부평이 아닌 경기도 김포면 장릉묘원에 자리 잡게 되었을까 이다. 시인이 생을 마감하고 그의 문학적 토양이 된 부평 쪽이나 그 근처에 뼈를 묻어야 할 것이고, 그렇게 유언을 남겼어야 하는데 시인과 전혀 연고가 없는 하필이면 김포에 무덤이 세워지게 된 것부터 사실 따져야 할 사항이다.

그리고, 1974년 8월 29일 고 육영수 여사 추도식에 참석해서 ‘哭를 육영사님 영전에’ 추모시를 공식적으로 읊게 된 곡절이 무엇인가 하는 질문에도 시인 한하운은 속시원하게 이야기를 해야 부평구민들이 그의 시비가 부평에 세워지는 것을 통 크게 허락할 것이다.

한하운 시인이 살아생전에 1973년 4월 전남 고흥군 도양면 소록도에 시비가 건립되어 있다. 비면 후면에는 한하운의 대표시 ‘보리피리’가 음각되어 있다. 시비가 사실 생전에 만들어지기는 힘들다는 게 우리나라 유교적인 전통이기에 살아생전에 그의 시비가 세워진 것도 이외라는 점에는 이의가 없을 듯하다.

한하운이 태어난 데도 짚어야 할 사항이다. 그가 태어난 곳은 함경북도다. 부평에는 1950년 3월에 처음 발을 디딛다. 정주 시간을 따져보면 부평과 인연을 맺은 것은 불과 25년이다. 그리고 그가 ‘무아문화사’를 만들어서 활동한 곳은 인천 부평이 아니라, 서울의 명동. 늘 서울에 고개를 두고 있었다는 것도 부평지역에서 헌양사업을 하기 위해서는 꼭 짚어야 할 사항이다.

그리고 시비를 어디에 세울 것이고, 시비에는 어떤 연보가 넣을 것인지, 한하운의 시 가운데 어떤 것으로 부평에 세워질 시비에 박을 것인가 하는 줄줄이 거쳐야 할 일들이 많고, 다들 논쟁거리가 될 일이다.

이런 논쟁거리를 해소하는 것은 행정이나 지역의 이름 있는 단체의 대표들이 나서서 될 일은 아니다 라는 점이다. 공적인 영역에서 이뤄지는 문학인의 헌양사업은 특히 그렇다. 그런 점에서 시인 한하운의 헌양사업은 문학인으로서 한국근대문학사적 접근과 평가가 우선적으로 뒤따라야 숱한 논쟁과 시비를 걷어낼 수 있다.

시인 한하운의 한국근대문학사에 어떤 자리에 서 있는가에 대한 평가와 접근이 없이는 헌양 사업이 개인적인 차원으로 전락할 수 있다는 점에서 제일 우선적으로 문학사적 평가가 필요불가한 조치이다.

따라서, 부평구는 시인 한하운의 헌양 사업이 차질없이 진행되기 위해서는 현재 구성된 운영위원회를 혁파하고, 문학사 전문 전공자와 지역문학인들로 새롭게 구성해서 이 일을 진행하는 것이 시인 한하운 헌양사업이 인천과 부평 지역에서 별 무리가 없이 진행될 수 있는 단초임을 명심하기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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