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이정민 기자_m924914@naver.com
국회입법조사처, 타당성 조사가 예산확보용으로 둔갑…김용직 원장 자질 논란도
이명박 정부 시절 준공된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이 예비 타당성 조사에서 경제성 분석이 낮았음에도 무리하게 추진된 것으로 드러났다.
더불어 현 김용직 원장이 대한민국 헌법을 부정하는 등의 발언을 해 자질 논란이 일었던 것으로 확인됐다.
예비타당성 조사가 예산 확보용으로 둔갑?
국회입법조사처는 21일 ‘예비타당성조사제도의 주요 쟁점과 향후 과제’라는 보고서를 발간했다. 요점은 예타 조사 결과의 적정성을 객관적으로 평가할 수 있는 제도의 미비로 정부 예산을 확보하기위한 형식적인 절차로 전락했다는 것.
주요 쟁점은 현재 이 제도가 17년이 지났지만 선정기준의 조정이 한 번도 없었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500억 이상 타당성 조사 대상 사업을 금액을 낮추는 방식으로 정부가 무리하게 추진했다고 지적했다. 덧붙여 정부 재정규모 상승에 따라 이에 상응한 수준으로 금액을 상향 조정해야 한다는 분석이다.
김재환 입법조사관은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사례를 들었다. 김 조사관에 따르면 2012년 12월 문화체육관광부 청사에 준공된 박물관의 경우 예타 조사를 시행했지만 중간보고 결과 경제성 분석이 낮아 사업 추진이 어려웠다.
그러나 정부는 중간에 예타 조사를 철회하고 사업비를 500억 미만인 497억으로 조정해 사업을 재추진했다.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공약을 지키기 위해 무리하게 혈세를 집행한 것이다.
김 조사관은 “실제 국회와 감사원의 타당성재조사 요구가 있더라도 그 주체가 기획재정부이고 실제 조사 수행기관도 KDI등으로 신뢰성 논란이 제기된 적도 있다”고 지적했다.
김 조사관은 향후 제도 보완 사항으로 사업계획 적정성 검토의 법적 근거 마련, 사후평가제도 도입, 조사 수행과정에서 외부 의견 체계적 반영 등을 제안했다.
김용직, 5.16은 근대화 혁명…박물관 자료엔 1948년 대한민국 출범?
한편 지난 1월 취임한 김용직 관장의 정체성 논란과 보은성 인사가 화제가 된 바 있다.
김 관장은 국정교과서 찬성 입장으로 홍역을 치렀다. 이밖에 그는 ‘5.16는 근대화 혁명’, ‘임시정부는 민족운동단체이지, 정부가 아니다’, ‘식민지에서 해방된 어느 나라나 식민지 치하 간부(경찰)들이 활동했다. 그러지 않으면 정부가 돌아가지 않았다’ 등의 발언으로 논란이 됐다.
현재 박물관 영상자료 등에는 헌법에서 보장한 임시정부를 부정하는 듯한 역사적 서술이 가득하다. 일례로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확립’ 영상 서문에 “1948년 8월 15일 대한민국 출범 이후 굴곡을 거치면서도 전진해 오늘날 충실한 민주주의 국가로 자리 잡기까지의 역사를 되돌아본다. (중략) 서구에서는 몇 백 년에 걸쳐 확립된 민주주의 정치. 하지만 대한민국에서는 1948년 일거에 도입되었다”고 서술했다.
이어 ‘대한민국 정부수립’이라는 제목의 영상에는 1945년 8월 15일 이후의 역사를 시작으로 편술했다. 말미엔 일부 학자들의 말을 인용하면서 “역사 발전의 방향을 올바로 설정했던 나라”라는 의미심장한 문장을 삽입했다. 다음은 학자들의 인용 부분이다.
“해방 3년이 사실은 준 식민지도 아니고 식민지도 아니고 해방도 아니고 독립도 아닌 매우 어정쩡한 국가 상태를 유지했었습니다. 그러다가 1948년에 국가가 수립되었던 것은 일제 35년의 청산, 국민 국가의 탄생, 자본주의 경제체제의 도입, 이런 것들이라는 점에서 분명히 절반의 축복이었음에는 틀림이 없을 것입니다”(신복룡 전 석좌교수 / 건국대 정치외교학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으로 인해서 남북통일이 거덜 나고 에.. 통일이 안 되고 남북 분단이 됐다, 이거, 이런 논리는 사실에 맞질 않아요. 왜 그러냐 하면 이북에서는 이미 인민위원회를 만들어서 사실 상의 국가를 만들었어요. 건국하고 있는 거야, 감춰놨어요. 만약에 그때 대한민국 정부수립이 안 됐다면 영원히 우리 독립은 잃어버리고 마는 거야. 아니면 공산주의 국가가 되는 거야”(박성수 명예교수 / 한국학중앙연구원)
“1948년 정도면 이 동아시아에서는 완전히 러시아는 이제 공산주의 국가이고 북한도 이제 완전히 김일성 체제에 들어갔는데 나머지 반쪽을 지켜서 자유민주주의 국가를 만든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었다”(이철순 교수 / 부산대학교 정치외교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