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삼일절이면, 지역에서는 독립유공자 포상이 이뤄진다.
기미만세의거는 1919년 3월 1일 전후로 한반도 전역에서 일어난 이른바 근대 국가형태로 나라를 만들어야 겠다는 목소리를 낸 투쟁이었다.
근대 국민으로서 주권을 갖고자 한 내용이다.
1919년 의거 이후로 근대 국가는 어떤 형태로 만들어야 할까 구체적인 노력들이 민족 국가 건설, 인민 중심의 국가, 사회주의 국가 등 여러 상상력을 촉발시킨 의거이기에 중요하다.
1919년 기미만세의거는 그런 다양함 상상력을 구현하는 촉발제였다. 여러 형태 국가 모델은 전제가 우선 조선 중심으로 뭐든 만들어야 한다는 것으로 수렴된다. 공산주의는 민족 개념이 없고, 사회주의는 계급 개념이 우선하기는 하나, 일제강점 아래에 있는 주권 없는 상태에서는 우선 우리 권리를 찾는 것이 최우선 과제였다. 이걸 일본제국주의 반대 투쟁으로 요약할 수 있다.
이렇게 장황하게 이야기하는 이유는 3.1 의거는 다양한 국가 형태를 상상하는 촉매제 역할을 한 것이기에, 그 뒤에 민족주의 이념으로 무장한 사람이나, 사회주의 계급주의, 공산주의 이론, 아나키즘 이론으로 무장해서 각기 다른 방향을 나아간 것은 우선 전제로 우리 주권을 되찾는 가장 효율적 방안이 무엇인지에서부터 시작한 것이라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삼일절에는 주권 되찾기에 나선 모든 사람들을 험써 발굴해서 훈장을 줘야 한다.
사회주의자이건 공산주의자이건 간에 일제강점기라는 시기에 투쟁을 펼쳤다면 독립유공자로 인정하는 것이 마땅하다.
현재 대한민국, 여기 인천에서도 아직도 기미만세의거 의미를 제대로 읽지 못하고 있다.
남조선노동당 2인자 인천 영흥도 출신이자 인천상업학교를 다닌 이승엽은 아직 역사에서 복원시키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렇다.
그도 일제강점기에 사회주의자로 몸을 던진 이유는 나라(주권) 찾기에 사회주의 운동이 효과적이라는 생각 때문일 것이다.
2022년 삼일절에는 인천 영흥도 출신 남조선노동당 2인자 이승엽도 우리 역사에 복원에 되어야 한다. 기미만세의거는 주권 없었던 당시 숱한 조선 청년들이 반제 투쟁으로 길로 나아갔기에 그렇다. 그들의 피와 땀이 오늘날 우리가 있기에 더욱 그렇다.
남조선노동당 2인자 이승엽 복권은 기미만세의거 정신을 새롭게 이어가는 전환점으로 받아들일 수 있는 역사적 사건으로 기록될 것이다.
이젠 그런 시간을 갖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