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이장열 편집인
인천시와 인천문화재단은 신미양요 발발 150주년을 맞이하여 6월 12일(토) 인천시립박물관 석남홀에서 <19세기 국제 정세와 신미양요>를 주제로 학술회의를 개최한다.
신미양요는 1871년 강화도에서 벌어진 조선과 미국 간 최초 군사 충돌로서 10여일간 동안 강화도 초지진, 덕진진, 광성보에서 조선군 350여 명이 전사했다. 이후 조선은 쇄국양이정책을 더욱 공고히 하고 전국에 척화비를 세우는 계기가 된 사건이다.
이번 학술회의에서는 미국인 학자 토마스 듀버네이 박사(영남대 교양학부 교수)가 신미양요 발생 전후 과정을 여러 보고서와 자료들을 종합해서 있는 그대로 살펴보면서, 특히 당시 전투 상황에서 발생한 유물(총기, 총탄 등)들을 살펴봄으로써 신미양요 실체에 구체적으로 접근하는 ‘신미양요’ 논문을 발표할 예정이다. 이 논문은 신미양요 사건 자체에 집중한 최초의 연구 성과로 받아들여진다.
토마스 듀베네이 박사는 “그 대화에서 미국과 한국이 중대한 문화적 오해가 생겼고 이는 양 국가 간의 충돌의 배경이 되었다. 드류는 사절단에게 미국이 “측심을 하고 (염하/소금강/강화해협-본 논문에서는 염하로 표현)의 해안을 조사하기를 원한다”고 했으며 이에 대해 그들은 이의를 제기하지 않았다”고 전한다. 드류는 또한 조사팀이 간섭을 받지 않도록 할 것이며, 조사팀이 시작되기 전에 해협에서 물러날 수 있도록 공지를 하기 위해 24 시간이 주어질 것을 요청했다. 이 모든 것에 “그들은 반대를 의미하는 대답을 하지 않았다.” (Ibid.) 미국인들에게는 ‘이의 없음’과 ‘답변 없음’이 암묵적 승인을 의미했지만, 한국 특사들에는 허가가 주어지지 않았기 때문에 미국이 진행할 권한이 없다는 것을 의미했다. 한국 측이 분명하게 말했더라면 따라야 할 무력 분쟁은 피할 수 있었을 가능성이 있지만 실제 그랬을지 여부는 확실히 알 수 없을 것이다.” – ‘신미양요’ 가운데서.(한글본)
지금껏 신미양요 사건은 발발 원인에 대해서 집중적으로 연구되어왔다. 이번 토마스 듀베네이 박사의 논문은 사건 당일 실제 일을 중심에 두고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연구 방법을 채택하여 신미양요 실체에 다가설 수 있는 여지를 만들어냈다는 것이 의미로 받아들여진다.
1871년 강화도에 온 미군 아시아 함대는 USS 콜로라도, USS 알래스카, USS 베네시아, USS 모노카시, USS 팔로스 5척이었다.
토마스 듀베네이 박사는 “조선측은 미국인의 눈에 조선이 무엇을 잘못했는지를 진정으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 같았다. 조선의 입장에서 조선의 주권 영토가 침범되었고 조선은 어떤 나라라도 그러한 상황에서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방식으로 대응했다.”며 문화적 차이로 인한 소통 부족으로 빚어진 사건으로 받아들여져야 한다 주장했다.
특히, 그는 “군사적으로 미국은 이 분쟁에서 쉽게 승리했지만 주로 무기의 우월성 때문이었다. 양측이 보다 동등하게 무장했다면 결과는 매우 다를 수 있었다. 적어도 사상자는 의심할 여지없이 그들만큼 왜곡되지 않았을 것이다. 외교적으로 한국이 미국 요구에 결코 굴복하지 않았기 때문에 이겼다고도 말할 수 있다. 그것은 모두 관점에 달려 있다.”고 결론을 맺었다.
한편 이번 학술회의 종합토론 좌장은 한철호 동국대 교수가 맡았으며, 발표는 조광 前 국사편찬위원회 위원장 기조강연을 시작으로 제1발표에서부터 제5발표까지 19세기 조선을 둘러싼 국제 정세를 미국, 영국, 중국, 일본, 국내 상황별로 살펴본다. 이를 통해 신미양요 의미를 국제 관계 속에서 재조명해 볼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학술회의는 코로나19 감염 및 예방을 위해 생활방역 수칙을 철저히 준수하며, 발표자·토론자만 모여서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한다. 관심 있는 시민은 누구나 유튜브 채널 ‘인천문화재단IFAC’에서 실시간으로 시청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