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 이정민 기자_m924914@incheonpost.com
대학생 강요셉 군이 들려주는 뜨거웠던 촛불 혁명기
“지금 들고 있는 연설문은 제가 당당히 쓰고 기록한 것입니다. 박근혜 대통령처럼 사인에 불과한 최순실에게 맡겨 쓰지 않았단 말입니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가장 큰 피해자는 바로 우리 대학생입니다. 학업과 알바에 쓰러지는 한이 있더라도 결코 좌시하지 않고 끝까지 광장에서 촛불을 들겠습니다”(11월 28일 구월동, 민주당 시당 시국대회 발언)
고려대 사회학과 학생인 강요셉(26)씨는 지난 달 더불어민주당 인천시당 대학생위원장에 임명됐다. 강 씨는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이 처음 불이 붙은 이화여대 정유라 특혜 입학에 분노를 금치 못했다. 이에 자발적으로 대학생위원장을 지원, 시나브로 정치학도가 되어버렸다.
강 씨는 약관의 나이지만 임명직 위원장으로서의 제 몫을 톡톡히 해냈다. 그 배경엔 김성수 청년위원장의 도움이 컸다. 시당 청년위원회는 매주 남동구·중구·서구 등지에서 촛불 집회를 열어 또래 청년들과 소통을 이어왔다. 그러며 박근혜 대통령 퇴진과 탄핵의 목소리를 전파했다.
대학생 강요셉의 뚝심과 열정은 아버지 세대의 피 맺힌 민주항쟁 유산
강 위원장의 뚝심과 열정은 아버지 세대에서 파생된 87년 ‘호헌철폐·독재타도’ 민주항쟁에서 비롯됐다. 이후 세월호 참사 속 ‘가만히 있으라’는 말로 희생된 아이들의 분노를 받아 부정부패에 결코 가만히 있지 않겠다는 결기가 피어난 것.
그는 “소시민으로서 할 수 있는 것이 거리에 나와 함성을 외치는 것이지만, 이런 작은 행동이라도 하지 않으면 더는 안 될 것 같다”는 어느 시민의 발언에 감동을 받았다고 전했다.
“매일매일 꼬리에 꼬리를 무는 박근혜 정부와 최순실 사단의 엽기적인 기행들을 보며 실망감을 넘어 절망과 분노가 솟구쳐 올랐습니다. 이기기 위한, 이겨야만 하는 삶을 살아야 했던 청소년과 각자도생의 길에 몰두했던 대학생들은 이번 국정농단사건의 가장 큰 피해자였습니다”
“부정입학과 부실학사관리로 온갖 특혜를 받았던 정유라는 ‘억울하면 부모를 원망하라’는 몰상식한 말에 교복을 입은 학생들이 광장에 불을 밝히고 함성을 외치게 했습니다. 대체 우리는 무엇을 배웠고, 무엇을 위해 공부했을까? ‘이러려고 학업에 열중 했나’하는 자괴감이 몰려왔습니다”
강 위원장은 지난 9일 더불어민주당 대학생위원회와 함께 국회 촛불 시위에 참여했다. 당시 국회 주변엔 온통 경찰들과 차벽으로 막혀 있었다. 매서운 칼바람의 날씨였지만 시민들은 ‘탄핵 가결’이라는 뜨거운 촛불염원으로 과감히 맞섰다. 드디어 국회에서 234표 압도적으로 탄핵이 통과되자 강 위원장과 학생들은 얼싸안고 통한의 눈물을 흘렸다.
“당시를 회고하는 소감이라면 시민의 승리이자, 정의의 승리이고 잃어버린 민주주의를 조금이나마 되찾았던….제 생에 평생 잊지 못할 날로 기억될 것입니다”
정치인 못지않은 똑 부러지는 그의 소회다. 강 위원장은 이후에도 광화문 촛불 행렬에 함께 했다. 혼자가 아니라 뜻을 같이하는 친구·선배들을 설득해 함께 광장에 섰다. 그는 근 한 달 가까이 되는 일정이었지만 1년 된 듯한 여정이었다며 당시의 긴박감을 전했다. 그러며 아버지 세대들이 겪었던 30년 전 그날의 시위에 대해서 긴 심경을 전했다.
“30년 전 아버지 세대들이 겪었던 그 아픔이 도돌이표가 되어 우리에게 다가왔습니다. 유신 독재에 신음하던 어느 한 시인이 반정부 시위에 참여하고 있는 아들을 보며 한 이야기가 있답니다. (아들아 너를 보고 편하게 살라 하면 도둑놈이 되라는 말이 되고, 너더러 정직하게 살라하면 애비 같이 구차하게 살라는 말이 되는, 이 땅의 논리가 무서워서 애비는 입을 다물었다마는….)”
“편히 살고자하면 도둑놈, 정직하게 살고자하면 가난뱅이, 편안함과 정직함이 공존할 수 없는 사회, 정직하게 사는 사람이 잘 살수 없는 사회..이런 사회는 지금도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 것입니다”
끝이 보일 수록 처음처럼
강 위원장은 학생운동 선배 세대에게도 진심어린 심경을 전했다.
“요즘 대학생과 청년들이 사회문제에 무관심하고 이기적이라고 비판만 하지 말아주셨으면 합니다. 극심한 취업난과 경제난 속에서 각자도생해야 하는 현실 속에서도 저희들은 나름의 방식으로 고민하고 또 싸워가고 있음을 이해해주셨으면 좋겠습니다”
예전 93학번 세대의 민중가요였던 ‘처음처럼’ 가사의 끝 말은 “끝이 보일수록 처음처럼”이었다. 강 위원장도 이제 ‘끝이 아닌 다시 시작’이라며 ‘처음처럼’이라는 마지막 결의를 다졌다.
“국회 앞에 마주한 시민의 승리는 이제 시작에 불과합니다. 직무 정지된 대통령으로는 만족할 수 없습니다. 국민의 명령을 대변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호되게 전해질 때까지 타는 목마름으로, 시민들은 광장을 향할 것입니다. 촛불이 횃불이 되고 횃불이 역사적 전환이 될 때까지 우리 대학생들은 끝까지 함께하고 행동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