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이정민 기자_m924914@incheonpost.com
교보문고, 신영복 1주기…미발표 유고록 ‘만남’ 1월 출간
“정치란 무엇인가. 평화와 소통과 변화의 길이다. 광화문에서 다시 시작해야 하는 길이다”(신영복 1941년 – 2016년 1월 15일)
시대의 스승이자 평화의 전령사로 잘 알려진 고 신영복 성공회대 석좌교수의 1주기가 돌아옵니다. 선생님의 호는 ‘쇠귀’입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나무야나무야’, ‘처음처럼’, ‘강의’, ‘더불어숲’, ‘담론’ 등의 다양한 책을 서술했습니다.
육사 교수로써 담담히 학생을 가르치던 서울대 출신의 신영복 선생님. 당신의 인생은 갑작스런 공권력 조작사건으로 육신과 정신 모두 철저히 파괴됩니다. 선생님은 1968년 박정희 독재정권이 조작한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장장 20년 20일 동안 감옥에 갇힙니다. 사형수, 무기수라는 운명 앞에서 절망만이 가득한 생애였습니다. 그러다 선생님은 1988년 우여곡절 끝에 강요된 전향서를 쓰고서야 세상의 조우할 수 있었습니다.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그렇게 태어났습니다. 선생님이 1976년부터 1988년까지 감옥에서 휴지와 봉함엽서 등에 깨알같이 쓴 가족에게 보냈던 편지들을 묶은 산문집입니다. 책에는 작은 것에 대한 소중함, 수형 생활 속 소소한 일상, 가족에의 소중함 등이 표현됐습니다.
“없는 사람이 살기는 겨울보다 여름이 낫다고 하지만 교도소의 우리들은 없이 살기는 더합니다만, 차라리 겨울을 택합니다. 왜냐하면…여름 징역은 자기의 바로 옆 사람을 증오하게 한다는 사실 때문입니다. 모로 누워 칼잠을 자야 하는 좁은 잠자리는 옆 사람을 단지 37도의 열 덩어리로만 느끼게 합니다. 이것은 옆 사람의 체온으로 추위를 이겨 나가는 겨울철의 원시적인 우정과는 극명한 대조를 이루는 형벌 중의 형벌입니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을 미워한다는 사실, 자기의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람으로부터 미움 받는다는 사실은 매우 불행한 일입니다“(감옥으로부터의 사색 중에서)
감옥은 당신에게 있어 가장 억울하고 고통스런 지옥이나 다름없었습니다. 하지만 선생님은 그 지옥마저 천당으로 바꿔놓았습니다. 인간미가 물씬 풍기는 세상과 감옥 사이의 경계마저 허물었습니다. 선생님은 글을 통해, 책을 통해 소소한 일상을 즐기는 음유시인이자 사상가로의 변신을 끌어냈습니다.
무려 20년 만에 세상과 소통하고 나서 선생님은 결코 과거에 매달리지 않았습니다. 증오나 분노의 감정마저 미학적 관점으로 녹아내렸습니다. 선생님은 회한이나 어두웠던 지난날의 굴레를 긍정과 성찰의 미학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누구도 감히 따라갈 수 없는 경지에 올랐다는 평가가 뒤따랐습니다.
<나무야나무야>는 그렇게 선생의 마음을 다독이며 탄생한 명작입니다. 감옥이라는 단절의 공간으로부터 벗어난 지 8년 만에 국토와 역사의 뒤안길에서 띄우는 사색의 글 25편이 담겼습니다.
“사람이 자연에 관하여는 상한은 결국 사람이 할 수 있는 도리를 다한 다음 결과를 기다리는 정성과 겸손함일 것입니다. 필연과 절대와 신념이라는 정신사의 오만을 반성하지 않을 수 없게 됩니다. 왜냐하면 ‘자연이 가장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나무야나무야 중에서)
선생님은 책을 통해, 사색을 통해, 관계를 통해 더불어 사는 세상에 대한 미학을 깨칩니다. 이미 20년이 넘는 강제 고독의 기간도 모자라 배움에 대한 열정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분노로 점철됐던 지난한 인생까지도 포용의 미학으로 감싸 안습니다. 선생님은 언제어디서나,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스스로 자연이 되었습니다. 당신은 <청구회 추억> 속 아이들처럼 여전히 생텍쥐뻬리의 ‘어린왕자’같은 순수한 소년으로서의 감성을 녹아냅니다.
“소수의 그룹이나 개인에게 전유된 것이 아니라 동시대의 모든 민중들에 의해서 이상이 공유되고 있는 혁명은 비록 실패로 끝난 것이라고 하더라도 본질에 있어서 승리입니다. 수많은 사람들의 실패는 그대로 역사가 되고 역사의 반성이 되어 이윽고 역사의 다음 장에서 새로운 모습을 드러내기 때문입니다. (중략) 우리의 근현대사에 점철되어 있는 숱한 좌절을 기억하는 방법도 이와 다르지 않아야 합니다. 승리와 패배를 기억하는 방법을 바꾸어 내는 일이야말로 진정한 역사 인식의 전환이기 때문입니다”(더불어 숲 중에서)
선생은 자유로운 영혼이 된 것을 자축하는 양 시대를 넘나드는 역사적 통찰과 미래 담론으로 많은 독자들을 울렸습니다. 마치 다시 처음으로 생애를 사는 윤회 사상 속 부처의 삶처럼 해탈과 견성을 함께 읊어냅니다. 그렇게 태어난 책이 바로 <처음처럼>입니다.
“한 사람의 일생을 평가하는 데 여러 가지 기준이 있을 거예요. 그 사람이 세속적 가치에서 얼마나 뭘 이루어냈나 중요하지만, 그 사람의 인생에 시대가 얼마나 들어와 있는가도 참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그 시대를 정직하게 호흡하고, 시대의 아픔에 함께하는 삶, 아픔을 외면하지 않는 삶이 가치 있는 삶이 아닐까…그런 생각이 드네요”(선생님 인터뷰)
“세월호의 참사는 하부의 평형수를 제거했기 때문입니다. 과적, 증축, 정원 초과 등 상부의 과도한 무게에 비하여 하부의 중심(重心)이 허약하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교훈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상부를 증축하는 감시 권력의 강화에 열중하고 있습니다. 사회의 경우도 다르지 않습니다. 하부의 중심이 든든해야 합니다. 하부는 서민들의 삶이며 그것을 지키려는 민중운동입니다. 이러한 서민들의 의지를 억압하고 상층권력을 강화하는 것은 평형수를 제거하고 또 다른 세월호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처음처럼 중에서)
선생님은 영어의 몸을 나와 평생 학생과 가슴으로 호흡하며 특유의 천진난만함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마치 만화주인공 피터팬이 세상으로 회귀한 듯 나비처럼 훨훨 돌아다니며 시대와 말 걸기를 주저하지 않았습니다.
그렇게 천년만년 자연과 인간의 평화적인 삶을 위해 영원을 살고 싶었던 선생님도 감옥에서의 고통과 질병으로 인해 끝내 세상과 이별하고야 말았습니다. ‘부처가 죽어야 부처가 산다’는 잠언이 있듯 그렇게 선생님도 또 다른 삶의 시작을 맞이하여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당신이 마지막으로 전해주신 <담론>이라는 책을 보며 영원히 당신의 잠언 속에서 함께 할 것을 약속합니다. 고맙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씨 과실을 먹지 않는 것은 지혜이며 동시에 교훈입니다. 씨 과실은 새봄의 새싹으로 돋아나고, 다시 자라서 나무가 되고, 이윽고 숲이 되는 장구한 세월을 보여줍니다. 한 알의 외로운 석과가 산야를 덮는 거대한 숲으로 나아가는 그림은 생각만 해도 가슴이 벅찹니다. 역경을 희망으로 바꾸어 내는 지혜이며 교훈입니다”
“겨울은 별을 바라보는 계절이라고 합니다. 제 삶의 모든 강의가 끝나면 나목이 된 느티나무 밑으로 가서 가지 끝에 별을 달아보기 바랍니다. 가장 마음에 드는 별을 골아서 가장 아름다운 가지 끝에 달아 보기 바랍니다. 끝으로 내가 좋아하는 글귀를 소개하고 마지막 강의를 마칩니다”
언약은 강물처럼 흐르고
만남은 꽃처럼 피어나리.
기자로서, 독자로서 마지막으로 신영복 선생님을 향한 독자의 애틋한 그리움을, 제 마음과 함께 담아 크리스마스 선물로 전합니다.
벌써 1주기라니 믿어지지가 않아요.
시간은 이렇게 빨리 가는데,
선생님 생각은 더 빨리 잊고 살지 않았나 너무나 죄송합니다.
누구보다 치열하게 사셨는데, 저희들은 과연 그 치열함 속에서 남기신 것들을
실천 아니, 생각조차 못하고 사는 이 치열함이 비루하고 서글프네요.
2016년 겨울 앞에서 더더욱 방황하는 갈대입니다.
그립고, 그립고, 그립습니다.
하루하루 나아지고 있겠지요..
개인적인 삶이나, 대한민국의 삶이나, 이 땅의 민주주의나..
그토록 염원하셨던 정의가 꼭, 발전하고 있음을
편히 계신 그곳에 꼭 전달되기를 1주기를 기념해서 소망합니다.
더불어 행복했습니다…고맙습니다..선생님!————–<ha**ung72 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