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이정민 기자_m924914@incheonpost.com
군사독재시절의 연예인 대마초 기획공작, 가수 음반 금지곡 지정 떠올라
가칭 김기춘 감독·조윤선 연출의 ‘문화예술 반정부 성향 블랙리스트’가 공개됐다. 1만 명 가까운 문화예술이 포함됐다. 여기에는 민족시인 고은, 연출가 이윤택 선생까지 포함돼 충격을 줬다. 과히 박정희 유신의 부활이다.
예술인들은 ‘무지한 바보 김기춘 실장’, ‘출세지향주의 아첨꾼 조윤선 장관’, ‘참 구역질나는 박근혜 정부’ 등의 비판이 쏟아졌다. 최순실 국정농단에 이은 ‘김기춘 게이트’가 연예계에 쓰나미를 몰고 온 양상이다.
지난 2011년을 기억하는가. 이명박 정부의 여성가족부는 ‘술·담배’ 등의 청소년유해무체라는 이유로 몇몇 가요에 ‘19금’ 딱지를 붙였다. 대표적으로 포크듀오 10cm ‘아메리카노‘. 2PM의 ’핸즈업‘, 장혜진 ’술이야‘ 등이다. 당시 이 논란은 끝내 국민적 공분에 부딪혀 해프닝으로 끝났던 ’웃픈‘ 사건이었다.
김기춘-박정희에서 김기춘-박근혜로, 유신의 부활
지금으로부터 40년 전인 1975~76년 박정희 군사독재 시절 연예계를 뒤흔든 사건이 있다. 바로 대마초 파동이다. 이 사건으로 연예인 150여명이 방송에서 쫓겨났다. 아니 그 이상의 연예인들이 ‘마녀사냥”주홍글씨’로 낙인 찍히면서 음으로 양으로 탄압 받았다. 향후 박정희 유신체제의 장기집권을 위한 기획공작으로 논란이 되기도 했다.
블로거 ‘김관명의 음악이야기’와 ‘서중석의 현대사이야기’ 등에 따르면 당대의 유명곡인 ‘그건너’‘아침이슬’‘고래사냥’‘미인’‘왜불러’‘거짓말이야’ 등 400여곡이 금지곡으로 지정돼 퇴출됐다. 심지어 외국 팝송인 발 딜런의 ‘블로잉 인 더 윈드(Blowing in the wind) 등도 금지됐다. 대신 박정희 유신체제는 ’건전가요‘라는 명목으로 국민들을 세뇌시켰다.
1975년 5월 13일 박정희는 유신을 선포하고 모든 연예활동에 검열을 시작한다. 한 마디로 전제군주 체제의 부활이 시작된 것. 공연활동 정화, 퇴폐풍조 퇴출 등으로 당시 한국문화예술윤리위원회가 무자비하게 칼을 휘둘렀다.
대마초 파동은 금지곡 지정 이후 등장했다. 1975년~박정희 사망까지 조용필·윤형주·이장희·김추자·신중현·정훈희·임창제·남진·김세환·임희숙·김도향 등 당대 내로라하는 톱스타들이 퇴출당하는 수모를 겪어야 했다.
방송계도 마찬가지였다. ‘서중석의 현대사 이야기’에 따르면 박정희는 새마을 정신을 강화하는데 TV·라디오를 활용했다. 국민들의 정신을 비정상적으로 만드는 대중적 오락프로그램을 철저히 배격했다. 통금시간을 정하고 심야시간에 라디오를 들으면 간첩혐의가 적용되기도 했다. 음악·드라마·연극·코미디·영화 등 연예계의 제노사이드(대학살)가 자행된 것이다.
당시 유신시대는 연예계 퇴폐 퇴출 비화가 국민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됐다. 장발 단속, 음주 단속, 미니스커트 단속, 대학 민중문화 말살, 시위집회 금지, 언론자유 폐쇄, 막걸리 보안법 등이 그것이다. 친구와 술 먹다가 ‘박정희’라는 단어만 나와도 끌려가 고문을 당했다.
독재자 박정희는 국민들을 억압하면서 정작 3일에 한 번 세금으로 대연회를 열면서 성 착취를 일삼았다. 그것도 대학생부터 유부녀를 구분하지 않고 유희의 대상으로 삼았다. 국민들과 연예계는 옥죄면서 정작 자신이 퇴폐풍조의 달인으로 등극했던 것. 독재자의 전형이었다.
작금 박근혜 정부 청와대에서 나온 비아그라 팔팔정, 최태민 19금 녹취록 등이 독재자 박정희의 퇴폐풍조, 전제정치와 오버랩되는 이유는 뭘까. 5.16장학회 출신의 김기춘이 당시 중앙정보부 대공수사국장을 한 것과 박근혜 정부 비서실장을 한 것은 어떤 평행이론이 담겨 있을까.
결과적으로 보면 김기춘-박정희의 유신 트라우마가 고스란히 김기춘-박근혜로 이어졌다는 반증이다. 21세기에 20세기에 있을 법한 수많은 사건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졌다. 진보와 보수를 떠나 왜 정치학자들이 그렇게 박근혜가 대통령이 되어서는 안 될 경고를 줬던 게 이해되는 시점이다.
“그간 내가 강조한 것처럼 박정희 대통령은 일제시대의 그 군인 정신이 충만했다. 그래서 장발에 대해 대단히 강한 혐오감을 갖고 있었다고 한다. 일제 말에는 머리를 빡빡 깎으면서 군국주의 분위기를 자아내지 않았나. 강준만 교수 책을 보면, 박정희가 텔레비전을 시청하다가 장발에 대해 한마디 툭 던지면 그것이 일제 단속령으로 나타나고 그랬다고 한다. 박 대통령은 1976년에 이렇게 연설했다.
“사회 기강을 해치고 국민정신을 좀먹는 저속하고 퇴폐적인 일부 대중 예술을 과감히 정화해나가겠습니다”(서중석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