캠프마켓에서
– 강산아
느티나무, 버들가지, 긴 그림자 내린 잔디 위에
점수판이 그대로,
덕 아웃이 그대로,
조립식 관중석도 그대로,
일요일에 질러대던 플레이볼, 환청이 들린다.
해설사들이 앞서 간 뒤를 따라
중학생 아이들이
종종 걸음으로 그늘에 모여 들었다.
코끝에 방울 땀이 맺힌 채
긴 의자에 주저앉아
한 나무에 깃든 참새떼처럼
짹짹짹, 조잘대기 시작한다.
담장마저 허물어진 자리에
경고없이 발포할 수 있다는 가시 돋친 철조망의 붉은 글씨도,
점령군의 식빵를 굽는 공장도 사라졌고,
팔도에서 강탈한 숟가락 녹인 물이
탄약이 되고, 총칼이 되어 황군의 손에 쥐어 주었던
무기공장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자본을 등에 업은
낯두꺼운 탐욕이 만든
폐허의 땅.
사라져간 그 자리
거스를 수 없는 역사의 시간,
그대로, 그대로, 변함없이 그대로다.
망령과 유령으로 떠도는
검은 대지 위에
작살처럼 내려 꽂히는 검붉은 태양의 햇발들 아래
아이들은 재잘대고 깔깔대며
하얀 이가 드러나도록 잔디 위를 뛰어다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