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시대에나 대중을 기만하는 지적(知的) 사기는 있어 왔으나, 요즈음의 한국은 부동산, 물품, 금융, 보이스피싱 등 유례가 없을 정도로 경제적(經濟的) 사기가 횡행하고 있다. 이 글에서 최근 문제가 된 ‘빌라왕’ 사기 수법과 대응 방안을 소개하고자 한다.
1. 빌라왕의 사기 수법
대표적 사기 수법은 다음과 같다.
시행사가 땅을 매입하여 빌라나 오피스텔 등을 신축하면, 이를 분양 또는 임대하기 위해서 분양대행사와 대행계약을 체결한다. 이때 빌라왕은 먼저 분양대행사에 접촉해서 이미 임대가 된 신축주택을 자신이 매수하겠다고 한다.
시행사 입장에서는 빨리 부동산을 처분하여야 신규 사업에 착수하기가 수월하고, 분양대행사도 분양 대행에 따른 수수료를 챙기기 때문에 빌라왕의 거래 제의를 마다할 이유가 없다.
빌라왕은 분양대행사를 통하여 주택을 매수하면서, 임차인(세입자)에 대한 임대차보증금반환채무를 자신이 인수하는 것으로 매매대금 지급을 갈음하기로 한다. 즉, 수도권 신축주택은 매도가(실거래가)가 형성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 전세 계약이 체결되기 때문에, 실제 매도가액과 전세가가 큰 차이가 없는 경우가 많다.
따라서 전세보증금반환채무를 빌라왕이 인수하면서, 그 주택에 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받는 것이다.
소유권이 이전되어 이제 건축주가 아닌 빌라왕이 임대인이므로, 임대차보증금반환의무도 빌라왕이 지게 된다. 빌라왕은 자신의 명의를 빌려준 대가로 공모자들로부터 수익을 챙겼거나, 분양대행사가 매도수수료로 받은 금액을 나누어 받았을 가능성이 높고, 주택가치는 기껏해야 세입자에 대한 보증금반환금 정도일 것이므로 매수한 주택에는 아무런 관심이 없다.
따라서 보증금반환을 하지 않고 잠적하는 것이다.
이 상황은 임대차보호법의 아이러니이다. “소유자는 부동산을 임대했어도 소유권자로서 그 소유물을 처분”할 수 있고(민법 제185조, 211조), “임차주택의 양수인은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 것”(주택임대차보호법 제3조 제4항)으로 본다.
주택임대차보호법’이 주택의 양수인이 임대인의 지위를 승계한다고 규정한 것은, 본래 집주인이 바뀌더라도 양수인인 새로운 집주인으로부터 임차인이 임대차보증금을 반환받을 수 있도록 법으로 세입자 지위를 보장한 것이다.
그런데 애초부터 양수인인 새로운 집주인이 임대차보증금을 돌려줄 생각이 전혀 없이 주택을 매수한 것이라면, 세입자는 전세(임대차)계약관계에서 벗어난 원래 집주인으로부터도, 신규 집주인으로부터도 모두 돈을 받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하게 된다. 신규 집주인에게의 보증금반환청구권을 두텁게 보호하려던 임대차보호법이 양수인과 세입자간 새로운 법률관계를 창설하여 원래 집주인은 면책시키고, 사기꾼인 신규 집주인으로부터는 실제로 돈을 받을 수 없게 되는 아이러니가 발생하는 것이다. 현재로서는, 이러한 법령의 의도치 않은 작용은 계약서에 추가적인 내용을 규정하는 방식으로 보완하는 방법 밖에 없어 보인다. 해당 내용에 관하여는 후술하도록 한다.
시행사가 직접 사기를 범하는 유형이다.
이 유형은 시행사가 근저당권자인 제3자를 내세워 세입자가 전세보증금을 실제로 받을 방법이 없도록 만드는 유형이다.
시행사가 건물을 신축하면 신탁계산을 종료하고 건물의 명의를 보통 자신의 가족이나 가까운 지인 명의로 해 둔다. 이 과정에서 감정평가를 통하여 해당 부동산에서 받을 수 있는 최고 한도의 대출을 받고 근저당권을 설정한다. 이후 해당 물건을 임대한다.
임대한 이후에 공모한 제3자(보통 금융기관이 아니라 개인이다)에게 돈을 차용하고 막대한 금액을 채권최고액으로 하는 근저당권을 설정한다.
임대차계약 종료일이 가까워지면, 임대인은 줄 전세보증금이 없다고 하면서 대출을 하여 돈을 마련할 때까지 기다려 달라고 한다. 부동산은 신축 때 감정평가사와 협의하여 가치를 높게 평가한 뒤 최대한 대출을 받은 것이기에, 세입자가 확정일자를 받아 두었어도 실제로 부동산 경매를 통해 배당 받을 수 있는 금액이 거의 없다.
임대 이후에 제3자에게 설정한 근저당권은 사해행위가 되어 취소 대상이 될 수는 있지만, 세입자가 실제로 받을 가능성도 낮은 보증금반환을 위해 임대인에 대한 보증금반환소송과 수익자, 전득자에 대하여 근저당권 설정을 취소하는 사해행위취소소송을 모두 진행하기에는 소송비용 등이 만만치 않다.
이 유형은 여러 개의 사업자를 등록하여 두고 소송을 두려워하지 않는 시행자가 소송을 할 테면 해보라는 식으로 임대보증금을 받고 반환하지 않고 버티면서 방치하여 두는 유형이다.
신종 유형은 주 피해자를 집주인으로 하는 유형이다.
빌라왕은 인근 재개발·재건축 등으로 주로 주택가치가 급등한 다세대주택 등을 타겟으로 한다. 공인중개사 등에게 연락한 빌라왕은 소유·거주기간이 오래되어 양도소득세를 거의 내지 않아도 되는 가치가 급등한 주택을 비싼 값에 매수하겠다며 물건을 찾아달라고 요청한다. 집주인은 재개발·재건축 단지 등 비싼 신축아파트 단지로 이사하고 싶어하므로, 자신의 주택을 비싼 값에 매수한다는 데 마다할 이유가 없다.
단, 해당 거래에는 조건이 있다. 매수인은, 자신이 주택을 매수하는 경우 대출을 받는 데 어려움이 있으므로, 계약금을 지급하고 먼저 소유권을 넘겨 주면, 근린생활시설 등으로 용도변경을 하여 대출을 받아 잔금을 지급하겠다고 제시하는 것이다.
잔금을 받지 않으면, 소유권을 넘겨주면 안된다. 그런데 막대한 계약 금액에 눈이 멀어 이 원칙을 지키지 않으면 사고가 난다.
위와 같은 계약 방식은 근저당권 설정 등 각종 장치를 통해 매도인을 보호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기도 하나, 애시당초 매수인이 잔금을 지급할 생각도, 능력도 없었다면 변호사가 아무리 계약서를 잘 작성한다 한들 백약이 무효하다.
용도변경을 한 뒤 대출을 받아 잔금을 지급하겠다고 한 매수인(명의대여자일 가능성이 높다)은 대출금 및 세입자가 있는 경우에는 보증금까지 받아 잠적한다. 매도인은 재판을 승소하고 소유권을 넘겨준 주택에 대하여 경매를 한다고 해도 이미 근저당권이 잡힌 주택에 관하여 제 값을 배당 받을 수 없다.
2. 빌라왕에게 사기를 당하지 않기 위한 사전 체크사항
먼저, 빌라 등에 관한 전세계약을 체결하는 경우, 다음과 같은 특약사항을 포함하면 보호장치가 될 수 있다.
“임대인은 본 전세(임차)주택을 임차인의 동의 없이 양도할 수 없으며, 동의 없이 양도한 경우 양수인 뿐만 아니라 임대인도 임대차보증금반환의무를 진다.”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가입이 전세(임대차)계약의 조건이다. 어떠한 사유 및 귀책사유를 불문하고 전세보증금 반환보증보험가입이 되지 않는 경우 임차인은 즉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
즉, 집주인이 바뀌는 경우를 대비해 임대인의 보증금반환의무를 명시하고, 전세보증금반환보증보험가입사유 등이 충족되지 않을 경우를 대비해 보험가입이 안되면 즉시 계약을 해제할 수 있다는 조항을 두는 것이다.
계약 체결 당일, 계약서 날인은 반드시 건축주, 양수인 등 소유자인 계약 당사자와 직접 해야 한다.
분양대행사 직원 또는 공인중개사인 대리인과 계약을 체결해서는 안된다. 상식이지만, 근저당권이 시가에 비해 너무 높게 설정되어 있는 부동산을 급하다고 계약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
계약의 구체적인 내용에 따라 포함하여야 할 특약조항은 다양하므로, 사전에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서는 경험이 많은 변호사에게 검토를 요청하는 것이 좋다.
다음 편에서는 빌라왕에게 사기를 당해서 보증금을 받지 못한 경우의 대처방법에 대해서 기고할 예정이니 도움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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