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김중호 객원기자
동인천 역에서 송현시장 쪽으로 걸어서 3분이면 가는 곳, 엎어지면 배꼽 닿을 곳, 그곳에 옛날 극장이 살아있다.
1957년 개관해 6, 70년대의 전성기를 지나고 실버극장으로 재탄생해 노인들의 휴식과 만남의 장으로 운영되어 오던 곳을 최현준 대표가 사회적 기업으로 리모델링하면서 젊은이들이 찾기 시작하는 극장이 되었다.
극장 3층에 올라가면 미림극장의 역사관이 작은 전시공간을 통해 구현되고 있는데, 최대표가 극장을 인수했을 땐, 몇 트럭 분의 자료가 쓰레기가 되어 나가고 없었고, 당시 그 자료의 소중함에 대해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었던 점도 한 몫 했을 것이다.
옥상 창고에 수북이 먼지를 뒤집어 쓰고 있던 박스를 열어보니, 현재 전시되어 있는 극장 역사 자료들을 발견할 수 있었다는 최대표의 전언이다. 미림의 로고로 사용하는 도안도 당시 발행되었던 티켓에 있던 것에 착안하여 지금의 극장 상징로고가 되었다고 한다.
지난 일요일, 동호회원과 함께 미림을 찾았다. 신상옥 감독, 주요섭 원작의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를 보기 위해서였다. 출입문을 들어서자마자 오른 쪽으로 카운터가 있고 거기서 바로 표를 산다. 좌석이 표시된 모니터가 보이지만, 좌석제로 운영되지 않고 있고, 따라서 표도 없다.
1층이 본관람석이 있고, 2층은 관객과의 대화 등을 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 마련되어 있다. 3층에 올라가면 소규모 역사관이 있고, 영화를 틀어주는 영사실이 있으며, 극장 안에서 보면 2층 관람석이 있는 층이 된다. 2층에 자리잡았다. 영화감상하기에는 2층이 좋다. 1층은 평평한 바닥에 너무 퍼져 있는 분위기 이고, 불이 꺼지고 영화가 시작되면 비상구 불빛이 너무 밝아 감상에 방해가 되기 때문이다. 스피커의 음향 또한 2층이 전달력이 훨씬 좋다. 1층은 소리가 퍼지는데, 2층은 그에 비해 집중되는 맛있다. 이런 저런 이유로 2층에 자리 잡았다.
이 영화의 원작은 주요섭의 단편소설인데, 원작은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 사이에서 벌어질 법한 감정들을 노출시키지 않고 옥희라는 6살 아이의 시각으로 바라본 순수한, 오늘 날로 말하면 가벼운 썸 정도의 이야기에 지나지 않는다. 그러나 신상옥감독의 이 영화는 그렇지 않다. 원작에서 많은 부분 디테일을 창작해냈다. 그래서 더 생생한 이야기가 됐고, ‘어머니’의 상황과 감정을 더욱 첨예하게 만들고 있다.
원작의 제목은 ‘사랑 손님과 어머니’이다. 그것을 ‘사랑’이라는 단어와 ‘어머니’라는 단어가 합쳐져 불러일으킬 ‘외설’적 이미지를 고려해, ‘사랑방’으로 개명한 제목을 내세웠다. 영화는 과부의 ‘개가’에 대한 교훈적 주제를 논리적이고 현실적으로 잘 그렸다고 본다.
사실 따지고 보면 신상옥 감독이, 과부의 사회적 인간적 문제를 다루었다는 데는 의심할 여지가 없이 명백하다. 왜냐하면, 이 영화의 주요 인물 라인들이 모두 과부들이기 때문이다. 시어머니, 옥희의 어머니, 식모, 미장원 여사장 등이 모두 과부로 설정되어 있다. 영화는 결국 시대적 흐름을 거부하지 못하고 물꼬를 트는 역할을 한다.
식모는 계란장수와 눈이 맞아 개가를 하고, 어머니의 친구 미장원 여사장은 사귀는 남자친구의 사진을 보여준다. 구세대의 관념은 가고 신세대의 새관념이 자리잡아가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이다. 한마디로 말해서 이 영화는 과거 조선의 유교 유습을 타파하려는 마지막 교육영화인 셈이다. 정비석의 소설 자유부인이 영화화되어 개봉한 때가 56년이었던 것을 감안하면, 시대의 조류를 탄 셈이라고 할까. 이참에 과부도? ㅎㅎㅎ
1961년도 미풍양속의 수준에서 대단히 파격적 주제라 할 수 있다. 예술이 교훈을 설파하면 그것은 교조의 나락으로 떨어져 버리고 만다. 신상옥은 교훈을 말하지만 교훈이 드러나지 않을 만큼 현실로 승화시킨 면이 있다. 그래서 이 영화는 한국 최초로 아카데미상에 외국어 영화부문 한국대표 출품작으로 선정되었다. 얼마전 ‘기생충’이 수상한 그 상이다.
또한 이 영화를 보고 있자면, 고전 영화를 통한 짙은 향수를 느낄 수 있다는 것, 이 영화의 촬영 장소 이야기다. 옥희와 선생님이 야외에서 그림을 그리는 장면이 연출되고 집으로 돌아오는 배경에 아름답고 특이한 정자가 눈에 들어온다. 이 정자는 수원 화성 내에 있는 ‘수류방화정’이라는 정자다. 수양버들과 흐르는 물이 수려한 장면을 연출하는 화성행궁의 절경 중 하나다.
물론 지금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지금 ‘수류방화정’의 모습. 수원 화성은 성곽이 정비되어 다시 준공되었고, 내부 정원 또한 아름답게 재단장하여 촬영 당시의 헐벗은 모습과는 많은 차이를 보인다.
그리고, 선생님이 하숙을 하는 집이 등장하는데, 이 집은 당시 이 집에 거주했던 의사 장준식의 집이었다. 이 집 또한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고, 사람이 살고 있는 집이다.
영화가 촬영된 지 62년이 지나고 있다. 그럼에도 그 장소가 그대로 남아있는 것은, 역사적 장소를 택했기 때문이다. 근처의 초가집들이 모두 헐려 나가고 재개발되어 상전벽해가 되어도 역사적 현장은 그대로 남아 옛날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준다.
국파산하재(國破山河在)가 무색할 정도로 예전의 것이 남아있지 않은 지금 시대에, 이만한 옛날을 또 어디에 가서 볼 수 있겠는가. 이런 향수는 고전영화만이 가지고 있는 애수의 장점이다. 배우들의 모습은 그런 애틋한 감정을 더 자아낸다.
영화는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제공하는 유튜브 채널을 통해 무료 감상할 수 있다. 그러나 극장에서 보는 감동은 유튜브 채널에 비할 수 없는 감정을 느끼게 해준다.
최은희, 전영선, 김진규, 한은진, 도금봉, 김희갑, 신영균, 양훈. 이만한 출연진이라면 초호화 캐스팅이라고 할 만하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어서 이름을 남긴다지만, 거기다가 배우는 죽어 세월의 무상함을 우리에게 남겨주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더 가슴 한쪽이 아리기도 하다.
허장강은 내가 중학교시절, 동대문 운동장에서 연예인 축구대회가 한창일 때 선수로 뛰다가 심장마비로 급사한 것을 생생히 기억한다. 흐르는 시간을 거스를 수 없는 인간만이 지닌 슬픔이 영화에 고스란히 담겨있다.
고전영화를 보고, 촬영현장을 다녀보는 것도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다. 극장에서부터 촬영현장까지 그 보는 재미와 다니는 재미가 쏠쏠한 것이 바로 고전영화 감상만이 가지는 특징이 아닌가 싶다.
3월이 다 지나고 있다.
봄맞이로 동인천에 가서 옛날 영화 한 편 보고 화교가 하는 양키골목 짜장면집에 가서 한 그릇 까만 국수를 먹는 것도 옆 친구에게 권해 볼 만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