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정유천, “부평이 낯설다”

글쓴이: 정유천(인천밴드연합 회장)

unnamed

고구려 시대인 470년 부평지역 읍호의 시초인 주부토군(君)이 설치되었고 이후 조선시대인 1310년 부평부로 개칭되니 부평의 역사가 그리 짧다고는 할 수없다.

이후 부평은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조병창이 들어서며 산곡동 영단주택과 미쓰비시공업(三菱功業社)에서는 삼능(지금 부평 2동)지역에 대규모 근로자 주택이라 할 수 있는 사택을 지어 제공했는 많은 근로자와 더불어 일본인들이 거주하게 된다. 일제가 부평일대에 설치한 육군조병창은 우리나라에 설립된 최초의 중공업단지였다. 중일전쟁 당시 이곳에서 생산한 무기를 일본군에게 전달하던 무기 공급처였던 셈이다. 이때 전쟁무기의 부품을 만들기 위해 세워진 조선기계(한국기계 전신)는 한국에 세워진 최초의 중공업회사다. 그리고 일본 패망후 1945년 미군이 진주하며 부평에는 에스캄 ASCOM(Army Service Command24)이라는 미군부대가 들어서고 이번에는 대규모 미군들이 부평에 들어온다. 당시 에스캄의 규모는 상당했었다.

Camp Market, Camp Grant, Camp Tyler, Camp Hayes 등으로 구성된 ASCOM에는 비행장뿐만 아니라 운송대 수중중대,보충대등이 있었으며 에스컴은 1950년 한국전쟁 발발 이틀 만에 철수했지만 1951년 재주둔 한다. 병참기지와 121후송병원으로 재구성한 에스컴은 1963년 55보급창·6의무보급창, 565공병자재창·19병기창, 4통신대, 512정비대대, 55항공대, 8057보충대, 37공병대·76공병대 등 7개 구역으로 나뉘게 된다.

ASCOM은 부평의 대부분을 차지하며 주둔지역을 넓혔고 인천항을 통하여 들어온 물자를 주한 미군부대에 재보급하였다.

당시 종합보급창 역할을 한 55보급창은 종업원 1천200명을 고용, 한국 내 단일 부대 중 최고의 인력을 자랑했다. 1970년대 들어서며 당시 미국 닉슨 대통령이 추진한 데탕트(detente), 즉 해빙정책의 분위기가 한국에까지 이어져 주한미군 7사단 철수가 전격 이뤄졌으며 지금은 캠프마켓이 이전을 기다리며 남아있다.부평은 오래전부터 낯선 이방인과 함께 살아온 독특한 이력을 가진 도시이다. 그런데 요즘 부평을 다니다보면 또 다른 이방인들의 모습을 쉽게 볼수 있다. 10여 년 전쯤 부평역 근처에 처음으로 인도커리음식점이 생겼다하여 호기심에 식구들과 가본 기억이 있는데 요즘 부평역 근처를 다니다보면 동남아음식점과 외국인들을 쉽게 볼 수 있다. 나라도 다양해서 중국인들은 물론 파키스탄.네팔.미얀마.베트남,태국,몽골등 국가의 사람들로 단순한 관광객이 아니라 대부분 취업과 거주를 목적으로 온 사람들이다.

그러다보니 부평에는 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베트남, 파키스탄, 버마. 네팔음식점과 식품점등 다양한 외국인상대 업소들이 부평역 주변에서 쉽게 보이고 간판에 쓰인 꼬불꼬불한 글씨들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한다. 접근성이 좋고 상대적으로 집값이 비싸지 않아서인지 부평역지구대 광장과 주변 그리고 남부역주변에서는 과장하자면 우리나라 사람보다 이들을 더 쉽게 볼 수 있다.

올해 부평의 인구는 548,035명으로 55만 명의 벽이 깨졌다. 하지만 오히려 이러한 외국인들은 점점 늘어나는 추세인 것 같다.

언어와 모습 문화는 다르지만 이들은 현재 부평에서 함께 살아가고 있는 부평의 구성원임에는 틀림없다. 이제 부평은 또 다른 이방인들과 함께 사는 것에 대해 관심을 갖고 준비를 해야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문화나 언어의 차이에서 오는 갈등이나 오해가 생기지 않게 하여야 하며 관차원에서 이들에게 지속적인 관심을 보이고 이들이 부평의 구성인 으로 함께 살아가는 것에 있어서 문제가 생기지 않도록 고민이 필요한 시기이다. 그러한 밥법중의 하나로 그들이 우리나라의 문화를 배우고 체험할 수 있는 프로그램이나 역으로 우리가 그들의 문화를 체험하거나 배울 수 있는 공연이나 문화행사 혹은 축제를 만들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다.
이렇게 문화를 나누는 거야 말로 쉽고 즐겁게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이라고 생각된다.

이미 다른 지역에서 있었던 시행착오를 문화를 통해 극복하며 부평은 또 다른 이방인과의 더불어 사는 삶을 준비할 때가 된 것 같다.

About THE BUPYEONG POST

답글 남기기

이메일 주소는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필드는 *로 표시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