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자주: [시각] 2017 0708호 실린 글을 다시 게재합니다.
글쓴이: 이 장 열ㆍ0123456789연구소
들머리
최근 장마비에 인천은 한순간에 물바다로 변해버렸다. 속수무책으로 당한 인천의 물바다 풍경을 이른바 서울 중앙언론에서는 “전국 3대 도시 인천, 100mm에 물바다…” 식으로 헤드라인을 뽑았다.
인천에서 생활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전국 3대 도시 인천’이라는 단어에서 시선이 멈칫했을 것이다, 왜 인천이 전국의 3대도시였나? 하는 의구심을 품는 것은 당연지사. 도시의 순위를 매기는 기준은 첫째, 인구수. 둘째 땅 크기, 셋째 재정 규모 등 수량화로 측정하고 있는데, 이런 기준점들이 사실상 도시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만족감이나 지역소속감을 대체적으로 무시하거나 아예 배제해 놓았음을 방증하고 있다.
이는 인천지역과 인천 사람들이 ‘전국 3대 도시’라는 타이틀로 인해 큰 괴리감에 휩싸이게 되는 사태가 충분히 예상되었기에 빚어진 감정일 것이다. 왜 이런 양가적 반응이 다른 지역에 비해(자의적이긴 하지만) 그리고 반복적으로 나타내는 것일까 하는 질문 앞에서는 학술적인 연구를 통해서만 그 해답을 쥐꼬리만하게 잡을 수 있는 성질의 것으로 여겨지는 대목이다.
인천지역 사람 중에 이러한 양가적 반응에 대한 질문을 던지는 여러 개인과 집단이 존재하고 있는가 하는 의문이 드는 까닭을 파악하는 것이 ‘전국 3대 도시 인천’이라는 단어 앞에서 속수무책일 수밖에 없는 이상한 풍경으로부터 조금이나마 벗어날 수 있는 유일무이한 문제제기일 것이다.
양가적 감정이 현재 인천을 뒤덮고 있는 사태는 왜 반복적으로 발생하고 있는가에 대한 까닭을 골똘히 살펴보는 일은 인천지역을 살아가는 연구자들에게 우선적인 몫으로 다가올 만큼 시급한 과제들이다.
2. 인천 지역 연구는 있었는가?
그럼 지역정체성(지역의식) 개념은 21세기에 어떻게 진화되어 왔는가, 살펴볼 필요가 있을 듯하다. 지역(region)이라는 개념은 요즘 들어 문화, 의식 등의 추상적인 가치 개념들이 혼합되어 사용되어 오고 있다. 특히 지역성이라는 단어에는 역사라는 의미도 첨가되어 광범위하게 사용되어지고 있는 현실이다. 이런 움직임에서 지역연구라는 방법론이 생겨나면서 각 지역에서 지역연구의 붐이 2000년 초반부터 일어난 것이다. 지방자치제도가 정착되는 시기와 맞물려 지역에 대한 관심이 높아졌다.
인천지역도 예외는 아니었다. 지역에서 활동하는 준연구활동그룹들이 얼기설기 모여서 <왜 다시 인천인가–인천. 삶 그리고 대안>(2000년)을 발간한 적이 있다. 이 책 서문에서 최원식 교수는 인천이라는 장소의 재발견 또 재창안을 토론한 ‘공간’ 분야에서 “인천문제의 해결을 정치, 경제, 사회로부터 풀어가는 전통적인 접근이 아니라 문화를 선차적인 지위에 두고” 인천 지역에 대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방향성을 이미 제시한 바 있다. 당시 2000년도의 한계는 이 책자가 새천년 인천의 희망을 위한 시민대토론회 토론집 성격에 머물러 있었다는 것이다.
당시 슬로건은 “인천을 알자, 인천을 토론하자, 새 인천을 건설하자”로 압축되어 드러난다. 지방자치단체장의 의지가 강한 나머지 지역에 대한 재발견으로 나아가기 위한 기초적인 접근 방식과 지역에 대한 개념 정리를 우선적으로 심도 있게 진행하지 못하고 조금은 정치적으로 흘려나간 것으로 그 결과가 말해주고 있다. 그 결과란 2000년에 인천을 알자라는 구호가 2017년에 17년이라는 세월이 흐르고 나서도 여전히 정치적인 구호에만 머물러 있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현재 인천시가 “인천 가치 재창조”니 “애인(愛仁)”이니, “인천의 최고, 최초”라는 수사들을 사용해서 인천지역을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있는 흐름을 가져가게 한 단초를 2000년 인천지역 준연구그룹들이 만든 셈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을 성 싶다.
왜 그런 판단과 하게 되느냐 하면, “인천을 알자”라고 하는 목표에 다가서기 위해서는 우선적으로 인천을 지역으로 바라보는 태도와 인식이 선행되지 않으면 지역을 정보성 위주로 인식하는 데에서 벗어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 2000년부터 지금껏 인천지역의 준연구그룹들은 인천은 지역이라는 인식을 하지 못하고 있다. 지역 연구의 기본적인 성질의 것을 17년이라는 시간이 지나서도 여전히 수행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는 지역연구를 위한 기초 자료 갈무리를 우선적으로 집중하지 못하고 있는 데에서도 발견할 수 있다. 인천대학교에 인천학연구소가 사실상 지역연구의 첨병으로서 그 역할을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인천학연구소라는 명명이 무색할 정도로 인천지역 연구 태도에 소홀한 것도 사실이다. 왜 그런가 하면 지역연구에 대한 소명감과 방법론을 몸으로 체득해야 하는데, 이를 위해서는 인천이 지역이라는 사실에서부터 출발해야 함에도 여전히 이것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발생한다.
지역구심주의란?
지역은 두 가지 방식으로 존재해 왔다 지방과 향토가 그것이다. 지방은 수직 위계에서 발견되는 양상이다. 곧 근대 민족국가 성립과 그에 따르는 국가적 기획, 통치 행위에 따라 이루어진 중앙에 의한 지방에 대한 지배와 파괴, 중앙 중심지에 의한 지방 변두리 지역에 대한 식민화의 결과다. 그래서 지역은 중앙과 중심의 세련되고 질 높은 자리에 대해 늘 잡스럽고 세련되지 못한 자리, 그런 삶이 존재하는 곳으로 인식되어 왔다. 향토란 상위 수준의 중앙, 중심지에 대해 맞서는 개념으로 형성된 것이다. 중앙의 지역패권에서 벗어나기 위해 오히려 지역적 성격을 부풀리고 지역 가치에 대한 지나친 애착으로 빠져드는 지역 분리의 태도가 향토성이다.
이제 지역은 더 이상 중앙, 중심에 얽매여 있는 지방이나 변두리도 아니고, 그곳을 향해 노여움을 펼쳐대거나, 자기도취의 담장을 높여 쌓아올리고 있는 향토나 절대가치의 공간도 아니다. 지역은 그 구성원들의 공동체의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진 세계의 중심이라는 인식 전환이 폭넓게 일어나야 한다. 곧 중앙패권주의니 지방우월주의에 대한 지역구심주의(localcentripetalism) 의식이 그것이다. 중앙은 ’우리‘ 지역과 떨어져 있는 또 다른 한 지역일 뿐이다. 지역 가치와 지역 다양성뿐만 아니라, 구체적으로 경험 가능한 삶터를 인식의 중심에 세우는 수평적 틀이 바로 지역구심주의다.
이런 관점에서 인천의 지역 문화, 사회, 경제 등은 질과 양으로 봐도 향토와 지방의 모습으로 머물러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이것이 인천 지역의 한계라기보다는 지역의 특수한 역사, 문화, 사회 경험일 뿐이다. 오랜 중앙지배적 구조가 만들어 놓은 부분 양상이거나, 지역의 역사적 경험으로부터 왜곡된 모습인 셈이다. 지역의 문화 등등은 이런 양상을 포괄하는 더 넓고 큰 자리다, 복합적인 형성 개념이며, 동적 과정적 실체가 지역이다.
인천은 서울 콤플레스에서 벗어나야?
인천은 서울 콤플렉스에서 벗어나는 길이 지역구심주의 사고를 갖추는 것이 우선이다. 서울 콤플렉스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못한다면 인천지역 의식은 구조화될 수 없는 성질이다. 서울은 여러 지역 가운데 하나라는 인식으로부터 인천은 지역 의식과 정체성 확보가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인천의 지역성과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한 지역 연구 방법은 첫째, 미시사, 생활사 연구가 우선이다. 이런 연구 주제를 잡아야만이 인천지역의 문화적, 사회적, 경제적 특성을 구조적으로 파악할 수 있는 것이다. 예를들어 부평 삼릉에는 음악인 누가 살았고, 무엇으로 음악활동을 했는지, 그리고 어떻게 먹고 살았는지를 파악하는 연구가 지역 연구 주제로 손색이 없는 것이다.
둘째, 학제 간 연구가 기본이다. 사회, 문화, 경제, 민속 등 다양한 연구분야가 학문적 칸막이로 구조화된 것을 혁파하는 것도 지역연구의 가장 중요한 흐름이다. 지역 연구자는 지역의 모든 분야를 다뤄야 지역의 연구 성과로 드러날 수 있는 것이다.
셋째, 지역 제도론적 방법에도 힘을 쏟아야 한다. 예를 들어, 각종 행사의 팜플렛, 포스터를 수집하고 정리하는 것을 말한다. 인천에서 만들어진 자료집들도 소중한 지역연구의 자산이다. 이것을 죄다 수집하고 분석하고 목록을 잡아내는 것 자체가 지역연구의 가장 기본적인 연구다. 이것이 이른바 인천지역의 준 연구자그룹들이 머리를 맞대고 우선적으로 추진해야 할 일이 아닐까 싶다.
왜 인천지역을 연구해야 하는가는 인천을 알기 위해서다, 인천은 근대 이후에 흩어지고 융합되고, 산포하는 등 장소적으로 공간적으로 부침이 너무나 많았던 곳이기에, 특히 지역이라는 의식을 하나로 묶어내기가 버거웠다. 그렇다 보니, 시간이 흘려가면서 인천 지역의 정체성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상황이다 보니 향후 인천이 미래로 나아가는데 여러 가지 걸림돌로 작용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소지역 내 갈등, 인천이냐 부평이냐, 강화도라는 소지역 의식이 자리하는 것들이 큰 에너지로 발휘되지 못하는 것도 인천 지역 연구가 부진하거나 한 발자국도 나아가지 못하게 된 결과이기 때문이다.
마무리
인천은 지역이다. 지역의식에서 출발해야 지역담론의 장도 형성하고 만들 수 있는 여지가 생긴다. 이것이 없다보니 인천을 전혀 모르고 서울의 위성도시쯤으로 알 고 있는 문화낭인들이 여러 군데서 판을 깨거나 호작질을 일삼아도 누가 하나 입을 대지도 못하는 낭패감에 휩싸여 있는 곳도 많다.
왜 이런 낭패감과 열패감으로 인천 지역이 애를 먹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여기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인천 지역 연구는 반드시 지금 이 시점에서 인천은 지역이라는 인식을 한 손에 들고, 또 다른 한 손에는 지역연구방법론을 쥐고 나아가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