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N은 지난 28일 밤 방송된 <응답하라 1988>의 8화 ‘따뜻한 말 한마디’가 평균 시청률 12.2%(이하 닐슨코리아 유료플랫폼, 순간 최고시청률은 14%)를 기록하며 ‘역대 응답하라’ 시리즈 최고시청률인 2013년 <응답하라 1994> 마지막화의 평균 11.9%(순간최고 14.3%)를 넘어섰다고 29일 밝혔다.
① 아련한 과거로의 여행
인터넷을 통해 많은 이들이 이 드라마를 보면서 운다고 고백하는 것은 드라마의 정서와 시대상이 자신의 아련하고 애틋한 추억을 건드렸기 때문일 것이다. 예비군복을 불량하게 걸친 채 동시상영 극장을 찾았고, 소독차가 하얀 연기를 뿜으며 지나가면 소리를 지르며 좋다고 그 뒤를 쫓아달렸다. 경주로 간 수학여행에서 수십명이 바퀴벌레 나오는 큰방에서 한데 엎어져서 잤고, 엄마 심부름으로 집앞 가게에 두부와 콩나물을 사러 갔다왔다. 오락실에서 갤러그 오락을 하며 초 집중해서 미친듯이 손가락을 튕기고, 자다가 연탄가스를 마시고 김칫국을 한 사발 들이켰으며, 3단 보온밥통을 두개씩 들고 등교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사람들이 과거를 떠올리면 나쁜 기억이 나기도 하지만 비율적으로 좋았던 것을 더 많이 기억해 낸다”면서 “지나고보면 좋았던 것 같고, 그때가 지금보다 편했던 것 같은 생각이 든다”고 말했다. 곽 교수는 “이전에도 90년대 복고 붐이 불었지만 90년대와 80년대는 완전히 다르다”면서 “현재 ‘응팔’에 열광하는 시청층은 80년대 청소년기를 보냈던 세대이고 그들에게는 당시가 각박함이나 엄혹함으로 기억되기보다는 안락하고 아득했던 시절로 기억된다. 특히 아동기였다면 귀여움을 한껏 받았던 좋았던 시절로 기억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② 가난해도 절망 않던 시절
통계청이 지난 26일 발표한 ‘2015년 사회조사 결과’에 따르면, 개인의 노력으로 사회경제적 지위가 높아질 가능성을 물은 데 대해 2009년에는 35.7%가 ‘그렇다’고 답했지만 올해는 21.8%로 나타났다. 이 수치는 매년 낮아지고 있다. ‘흙수저’, ‘금수저’, ‘헬조선’이 올해를 대표하는 키워드로 등장한 2015년이다. 그런 현실에서 1980년대를 조명한 ‘응답하라 1988’이 인기를 끄는 것은 어떻게 해석해야 할까. 시청자들은 이 드라마를 보면서 꿈같았던 1980년대에 대한 사무치는 그리움을 토로하고 있고 자연스럽게 당시의 시대상이 화제의 중심으로 떠오르고 있다.
‘응답하라 1988’의 보라는 햇빛이 안 들어 동창이 밝았는지 알길 없는 반지하에 산다. 다섯 식구가 우글우글, 겨울날 아침에 뜨거운 물이 모자라면 머리도 못 감고 학교에 가야한다. 하지만 보라는 쌍문동 최고 수재로 고교시절 전국 석차 80등, 수학은 전국 10등 안에 들었다. “서울대 법대 충분히 갈 수 있는 성적이었지만 부모 생각해서 사범대 수학교육과에 1년 장학금 받고 들어간” 서울대 2학년생이다. 구김살과 그늘은 커녕, 미래에 대한 두려움도 없다.
한 개에 2천원 짜리 바나나를 큰 맘 먹고 하나 사서 세 식구가 나눠먹어야 하는 선우도 쌍문고 전교회장에 1등을 다투는 수재다. 쌀 걱정, 연탄 걱정을 해야하는 홀어머니 밑에서 자라나지만, 선우의 앞길을 가로막을 장애는 없어보인다.
1980년대는 그러했다. 드라마가 80년대의 끝 자락을 조명하고 어느 정도 판타지를 가미했다 해도, 1980년대 청춘들에게, 대학생들에게 취업난이나 미래에 대한 두려움은 크지 않았다. 노력한 만큼 결실을 얻을 수 있고, 가난은 극복할 수 있다는 믿음이 유효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는 “경제를 발전시키느라 60~70년대는 힘들게 살아왔다면 80년대는 88서울올림픽을 계기로 경제적 붐업이 되면서 도약하는 시대였다”며 “저항적 시위 문화도 굉장했지만 그것은 젊음의 의식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반정부 시위에 참여했던 학생들도 80년대 후반 졸업할 때쯤 되면 유학을 가거나 고시공부를 하는 등 사회인으로 나갈 준비를 했다”고 말했다. 1983년 MBC에 입사해 ‘퀴즈 아카데미’를 연출했던 주철환 아주대 문화콘텐츠학과 교수는 “어느 시대에나 빛이 있고 고뇌가 있겠지만, 1980년대는 지금보다 여러가지로 궁핍했으나 영혼은 충만했던 시절”이라고 돌아봤다.
③ 다시 불러낸 80년대 대중문화
1980년대 대중문화계는 지금과 색깔이 확연히 구분된다. 가요계는 아이돌로 재편된 현재와 달리 다양성이 만개했고, TV에서는 개그프로 ‘유머일번지’의 시청률이 50%가 우스웠다. 또 외국 드라마와 홍콩영화가 폭넓게 사랑받았던 시기다. 1987년 데뷔해 3년간 폭발적인 인기를 누렸던 소방차의 김태형은 “지금은 아이돌 그룹 일변도이지만, 1980년대에는 아이돌부터 트로트까지 다양한 장르가 공존했다. 조용필 선배부터 주현미, 최성수, 양수경, 정수라, 전영록, 구창모, 이선희 등 허리 역할을 한 가수들, 우리나 박남정, 김완선, 이지연 같은 아이돌까지 다양했다”고 말했다.
극중 졸부 3년차 성균은 생애 처음으로 산 자가용인 포니2를 앞에 두고 “가자, 키트”라고 했다. 당시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미드 <전격 Z 작전> 속 주인공 대사를 흉내낸 것이다. 지금은 한류 드라마가 세계로 수출되고 있지만 당시만 해도 <브이>, , <코스비 가족>, <초원의 집>, <맥가이버>, <케빈은 12살>, <에어울프>, <소머즈> 등의 외국드라마가 남녀노소에게 사랑받았다.
극장에서도 홍콩영화와 할리우드 영화가 대세를 차지했다. <영웅본색>, <폴리스스토리>, <용형호제> 등 홍콩영화와 <백 투 더 퓨처>, <탑건>, <다이하드>, <더티댄싱>, <로보캅> 등 할리우드 영화가 줄줄이 관객을 끌어모았다.
드라마에서 성균이 호시탐탐, 시시때때로 흉내내는 개그는 모두 KBS 2TV ‘유머 일번지’에서 나온 것이다. 1983년부터 1992년까지 방송된 ‘유머일번지’는 ‘동작그만’, ‘회장님 회장님 우리 회장님’, ‘영구야 영구야’, ‘부채도사’, ‘변방의 북소리’, ‘북청 물장수’, ‘남 그리고 여 ’, ‘밤이면 밤마다’ 등 숱한 인기 코너를 생산해냈다. ‘유머일번지’를 탄생시키고 10년간 연출한 김웅래 PD는 “시청률 40~50%가 안 나오면 다음날 회사에서 질타를 받았을 만큼 ‘유머 일번지’의 인기는 대단했다”고 회고했다.
④ 유통업계, 발빠른 ‘응팔’ 마케팅
신세계 센텀시티는 지난달 30일부터 8일까지 복고를 콘셉트로 한 ‘고객감사 대제전’을 열어 쏠쏠한 매출 실적을 올렸다. 통이 넓은 와이드 팬츠, 청나팔 바지와 청자켓을 활용한 ‘청청패션’, 땡땡이라 불리는 도트무늬와 체크남방 등 1980~90년대 패션 스타일이 인기를 끌었다. 온라인쇼핑사이트 옥션은 최근 ‘응답하라 그때 그 추억팔이’ 기획전을 열고 추억의 먹을거리에서부터 복고 디자인의 패션용품, 가전 등을 최대 68% 할인 판매했다. G마켓은 ‘응답하라 1988’ 방영 이후 지난 6일부터 19일까지 40대의 큐브 구매량이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57% 급증했다고 밝혔다. 이는 전체 큐브 판매 증가율(185%)보다 높은 수치로, 드라마 속에서 정환과 택이가 큐브를 맞추는 모습이 잇따라 등장한 것이 영향을 끼친 것으로 해석된다. 극중 천재 바둑기사 택이가 나오면서 같은 기간 40대의 바둑 관련 제품 구매량은 75% 증가했다.
롯데제과는 ‘응답하라 1988’에서 매회 빼빼로, 월드콘, 가나초콜릿, 수박바 등 인기 제품을 당시 디자인 그대로 노출하며 간접광고(PPL)를 공격적으로 펼치고 있다. 롯데제과 홍보팀 안성근 과장은 “당시 제품 포장 그대로 우리가 만들어서 제작진에게 제공했다”면서 “과거부터 현재까지 인기인 제품의 이미지를 높이고 소비자들의 기억에서 당시의 좋았던 기억을 끄집어내는 데 효과가 있다고 본다”고 밝혔다. 롯데제과는 가나초콜릿의 후속 광고모델로 드라마의 주인공 혜리를 발탁해 가나초콜릿의 2015년판 광고를 선보이고, ‘응답하라 1988 추억의 과자 판매전’을 열 계획이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