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는 1987년 체제 이후 발생한 집단적 주검이다

세월호 참사에 대한 진상 규명.. 정부가 나서서 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참사 1년이 지난 이 시간에도 허약한 검찰이 한 수사결과만
믿어달라고 하는 수준…..

세월호 항적도, 레이다 기록…
정부가 내놓은 자료가 모두 조작, 편집된 것이
밝혀졌는데도 이 중요한 ㅈ료를 조작한 관계자들을 구속 수사해햐 하고,
이를 지시한 윗선도 밝혀야 하는데도 검찰은 그냥 아무런 조치도 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건국 1948년 8월 15일 이후에 한국전쟁을 거치고, 그 무수한 주검들이 있었다.
1980년 광주학살… 사건 이후에는 우리 대한민국에는 집단적 주검이 사라졌다.

그렇게 믿었다. 이른바 민주화 운동의 후과로 만들어진 평화.. 집단적 주검은
더 이상 등장하지 않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1987년 이후 체체에는 자리잡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런데, 2014년 4월 16일 세월호 사건은 우리가 그동안 없어졌다고 생각했던
집단적 주검이 발생한 것이다, 그리고 우리나라 미래를 책임질 청소년 고2학생
250명(실종자 4명 포함)이 대부분 희생됐다.

집단적 주검은 국가와 정부가 무능력과 무책임으로 발생한다는 점에서
문제의 심각성이 놓여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현재 국가와 정부가 세월호 집단적 주검에 대해서
진상규명을 제대로 하지 못한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갖게 한다.

이런 집단적 주검의 진상 규명은 시민 스스로 해야 가능함을
지나온 짐단적 주검의 진상규명을 밝히는 주체가 정부와 국가가
나서지 못한 점을 역사적인 흐름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세월호 집단적 주검에 대한 진상 규명은
이제 시민이 직접 나서서 밝혀야 때가
된 것이다,

현재 이 정부에 기대하는 것 자체가 시간 낭비임을
역사는 똑바로 가르쳐 주고 있기 때문이다.

민간 조사 전문가들을 모아, 협업으로 조사특별기관을
만들 것을 재안한다.

재정은 시민의 성금으로 하면 가능할 것이다.
해외에서도 세월호 관련 자료들을 찾을 수 있기에
해외에도 지부를 설립해서 수십년이 걸려도
반드시 이 세월호 사건만을 규명해야
부끄러운 2014년을 씻을 낼 수 있을 것이다.

About 이기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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