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범 김구 선생이 백범 흉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흉상제작을 마치고(1949년 2월 5일)

[한장의 사진] 백범 김구, 생전에 흉상 만들다.

글쓴이: 이장열 발행인

백범 김구 선생이 백범 흉상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흉상제작을 마치고(1949년 2월 5일)

최근 며칠 전, 모 서점에서 백범 김구와 관련된 책들을 전시했다.

이른바 3.1운동 100주년인지라, 서점에서도 역사 이벤트로 백범 김구를

내놓은 것이다.

백범 김구와 관련된 책들에는 위인전부터 백범일지 번역본, 평전 형식의 김구를

조명한 책들이 주류를 이뤄고 있고, 관련 서적들이 여타 정치인들과 비교해서도

많이 나왔다.

모 서점에서 백범 김구 관련 책들 가운데서  대한매일신보사에서 펴낸

백범 김구 전집이 눈에 띄었다.

그 전집에서 사진첩이 우선 눈에 들어 왔다.

평소에 봤던 사진들이 대부분이었는데,

책장을 넘기다고 깜짝 놀라만한 사진이 눈에 들어왔다.

 

“흉상 제작을 마치고'”(1949년 2월 5일) 이라는 짤막한 설명 위로

백범 김구 흉상 아래로 백범 김구가 앉아 있는 사진을 보고 놀란 가슴을 억눌렸다.

1949년 2월 5일에 경교장에 흉상을 설치한 것으로 보인다. 설치된 장소는 설명이 없지만, 경교장 말고는 놓일 때가 없을 것이다.

흉상 제작은 죽은 이 가운데 그 정신을 이어 받기 위해 이루어진 행위이다.

누구보다 백범 김구가 이 점을 잘 알고 있을 듯 한데,

왜 자신의 흉상 제작을 허락했을까 싶다.

 

신격화하는 것이 흉상이나 동상이나 하는 따위를 만들어낸다.

김구 자신을 신격화하기 위해, 흉상 제작을 허락한 것으로는 보이지 않는다.

백범 김구는 남한 단독 정부에서 이승만과 대결하는 당시로서는 유일한 인물이었기에

권력에 빌붙는 숱한 사람들 가운데, 백범을 존경한다는 명목으로 그를 설득했을 것이다.

백범 김구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  동상이 만들어진 것도 아마도 이 시기로 여겨진다.

백범 김구가 자신의 흉상을 만드는 것이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을 것이기게,

백범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백범의 어머니 곽낙원 여사 동상을 함께

만들면 문제 없다는 식으로 설득 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곽낙원 여사 동상-사진 맨 왼쪽 동상을 조각한 박승구. 이 동상은 어디에 설치되었는지 알 수 없다.  1949년 8월 경에 곽낙원 동상에 설치되었다.

 

백범 김구가 자신의 흉상 아래에 앉아서 포즈를 취한 사진을 보면서

백범 김구이 혹시나 미망의 권력에 잠시 취한 것이 아닌가 하는 아쉬움을 남기게 한다.

그리고 백범 김구는 몇 개월 뒤 1949년 6월 26일 안두희로부터 총격을 받고 사망한다.

 

이 사진에 처음 접한 것이라서 충격이었다. 대중에게는 이 사진이 전혀 알려지지 않았다.

두고두고 아쉽고, 그 흉상은 지금 어디에 있는지 궁금하다.

 

그리고, 이즈음 백범 김구를 앞세워 역사 이벤트로 활용하는 경우를 종좀 지식인들 사이에서 보인다.

잊혀진 숱한 광복 열사들을 지역에서 찾는 노력들에 힘을 쏟는 것이 백범 김구가 바라는 바가 아닐가 싶다.

너무 나가지 말자. 이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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