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訃告] 장기표 선생 별세

신문명정책연구원  장기표(해방둥이, 1945년생) 원장 별세=2024. 9. 22

-발인: 2024년 9월 26일

-장례: 서울대병원 장례식장 3층 1호

-장지: 이천 민주화운동기념공원

 

<장기표 해적이>

1945년 12월 27일 경남 밀양 상남면 남산리 남.

한림국민학교, 진영중학교, 한얼고등학교

마산공업고등학교-화공과

1966년,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입학

1970년, 전태일 분신으로  노동운동에 가담

1989년,대한민국에 한국전쟁 이후에 유일하게 합법적 진보정당 ‘ 민중당’ 창당 주도

 

<고인과의 소소한 인연>

1990년 가을쯤으로 기억하고 있다.
서울 홍대 근처에 있었던 ‘민중당’ 사무실로 가기 위해 마산에서 새벽 첫차로 동양고속버스에 올랐다. 강남고속버스터미널에 내려 물어물어 지하철을 갈아타고, 어렵게 한 허름한 건물 2층에 닿았다. 조심스레 문을 열고 들어가니, TV나 신문지상에서 뵌 이부영, 이재오, 김문수 선생 등이 탁자에 둘러 앉아 담배를 물고 한창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풍경이 눈에 들어왔다.

마산에서 10월에 있을 행사에 백기완 선생님과 정태춘 가수를 초청해서, 이야기며 노래를 듣고 싶다는 뜻을 앞서 전화로 부탁드린 바 있었다. 민중당 당직자을 찾아 “마산에서 온 학생입니더. 지난번 통화한대로 백기완 선생님을 행사에 초청하고자 왔십니더”라고 말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한텐 억센 경상도 말투로 들렸던 모양이다.

그러자 키가 크고 조금 마른 체구의 한 사람이 다가왔다.

“어디서 왔어요?” 경상도 억양이다.
“마산에서 왔십니더.”
“아이고 고향 후배가 왔네. 반갑소, 난 장기표요.”하며 대뜸 악수를 청해왔다.

선생을 처음으로 직접 만난 날이다. 전태일 열사와도 인연이 깊은 분이 고향 사람이었다니 새삼 놀랐다.

“먼 길 왔네. 무슨 일로 왔노, 고향 후배는?”
“백기완 선생님과 정태춘 가수를 마산 행사에 초청하고 싶어서 왔십니더.”
“그래요… 두 분 일정이 맞으면 함께 마산에 가실 수 있도록 해볼게요.
좋은 일이니 분명 가실 게요.”

그리곤 옆에 있던 민중당 당직자와 무어라 이야기를 나눴고, 결국 난 소기의 목적을 이뤘다. 꾸벅 인사를 드리고 나오려는데 장기표 선생이 날 불러 세웠다. 내 어깨에 손을 얹고는 봉투 하날 손에 쥐여 주었다.

“고향 후배가 고생이 많아. 작지만 노잣돈으로 써요, 또 봐요.”
“고맙십니더.” 얼떨결에 받고야 말았다.

민중당사를 나서 지하철역으로 걸어가면서, 슬쩍 봉투를 열어 봤다. 만 원권 열 장이 빼곡히 들어 있었다. 그 뒤로 선생을 또 다시 만나 뵐 일은 없었지만 그날 고향 후배라며, 고생한다며 살갑게 맞아주신 기억은 나의 뇌리에 선명하게 각인돼 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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