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가 한강, 대한민국 첫 노벨문학상 수상 쾌거

최광석 기자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선 강렬한 시적 산문”
한강 수상 뒤엔 ‘번역의 힘’

스웨덴 한림원은 10일 소설가 한강(54)을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자로 선정했다고 밝혔다. 한국인이 노벨상을 수상한 것은 지난 2000년 평화상을 탄 고(故) 김대중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째다.

스웨덴 한림원은 “한강의 작품은 역사적 트라우마에 맞서고 인간 삶의 연약함을 폭로하는 강렬한 시적 산문”이라고 선정 이유를 들었다. 이어 “한강은 작품에서 역사적 트라우마와 보이지 않는 규칙에 맞서며, 작품마다 인간 삶의 연약함을 드러낸다”고 부연하며 “그는 육체와 영혼, 산 자와 죽은 자 사이의 연결에 대한 독특한 인식을 갖고 있으며, 시적이고 실험적인 스타일로 현대 산문의 혁신가가 되었다”고 덧붙였다.

그간 노벨문학상의 영토에서 한국은 줄곧 ‘아시아의 변방’이었다. 시인 고은, 소설가 황석영 등이 2000년대 초부터 유력 후보로 외신에 등장했지만 번번이 고배를 마셨다. 일본은 가와바타 야스나리(1968), 오에 겐자부로(1994), 가즈오 이시구로(2017·국적 영국) 등 세 명의 수상자를 배출했고, 중국 또한 가오싱젠(2000·국적 프랑스), 모옌(2012) 등 두 수상자를 배출한 바 있다.

우선 제대로 된 영어 번역서가 드물고, 일본·중국 등에 비해 국제사회 인지도가 낮기 때문이라는 것이 한국 문단을 비롯한 출판계의 중론이었다. 지난 2016년 한강이 소설 ‘채식주의자’로 맨부커 인터내셔널 문학상을 받으면서 그 ‘번역의 장벽’은 처음으로 무너졌다.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 한강이 국제적으로 주목받은 데에는 세계 3대 문학상 중 하나인 영국 문학상 ‘부커상’의 역할이 컸다. 한강은 2016년 소설 ‘채식주의자’로 부커상 국제 부문인 맨부커 인터내셔널(현 인터내셔널 부커상)을 한국인 최초로 받았다. 이후 ‘채식주의자’는 20개 이상의 언어로 번역됐고, 2018년 스페인 산클레멘테 문학상을 받는 등 평단의 호평을 얻었다.

한강은 다양한 나라에서 ‘채식주의자’가 출간된 것과 관련해 “다양한 문화와 세대 간의 미묘한 해석 차이를 보는 것도 흥미롭지만, 그보다 더 인상적인 것은 소설이 일반적으로 받아들여진 방식”이라며 “모든 곳에서 여성 독자들이 이 소설을 더 많이 수용하고 이해했다”고 말한 바 있다.

한강은 지난해 7월 부커상과 한 인터뷰에서 “부커상을 통해 제 작품이 다양한 문화권에서 더 많은 독자에게 다가갈 수 있게 된 것에 감사하다”고 했다. 이어 “점점 더 많은 한국 작가의 작품이 해외에서 번역되어 출판되고 있다. 이는 한국 영화와 대중음악의 세계적인 성공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한강 커리어에 전환점을 가져온 작품 ‘채식주의자’는 ‘채식주의자’, ‘몽고반점’, ‘나무 불꽃’ 등 세 작품을 묶은 소설집이다. 한강은 “손가락 관절염이 심했던 터라 처음 두 작품은 종이 위에서 부드럽게 미끄러지는 펠트펜으로 썼다”며 “마지막 작품은 볼펜 두 자루를 거꾸로 쥐고 타이핑해야 했다”고 3년여 힘들었던 집필 과정을 돌아봤다.

이어 “당시에는 소설을 완성할 수 있을지, 심지어 작가로서 살아남을 수 있을지 확신할 수 없었다”며 “어쨌든 소설을 완성했고 작품 말미 ‘아름다운 동시에 폭력적인 인간의 삶을 어떻게 받아들일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서 출발해 다음 소설을 썼다”고 덧붙였다.

한강은 감각에 중점을 두는 소설가다. 그는 “시각적 이미지를 포함해 청각, 촉각 같은 생생한 감각을 전달하고 싶다”며 “이러한 감각을 전류처럼 문장에 주입하면 이상하게도 독자가 그 전류를 감지한다. 그 연결의 경험은 매번 저에게 경이롭다”고 했다.

한강은 스웨덴 한림원과 영어로 약 7분간 진행한 인터뷰에서 “놀랐다(surprised)”는 말을 다섯 번이나 반복했다. 그는 “다른 이가 소식을 전해줘서 수상 소식을 알았다. 아들과 저녁식사 중이었다. 수상 소식을 듣고 아들 역시 몹시 놀랐다. 매우 놀랍고 정말 영광스럽다”고 했다. 또 “수상 소식을 듣기 전까지는 책을 읽고 산책을 한 편안한 하루였다. 나는 술을 마시지 않는다. 그래서 아들과 차를 마시면서 오늘 밤 조용히 축하하고 싶다”고 전했다.

‘한국 최초의 노벨문학상 수상자인데 당신에게 어떤 의미인가’라는 질문에는 “나는 어릴 때부터 번역서 뿐 아니라 한국어로 된 책들을 읽으며 자랐다. 그러니 나는 내가 매우 가깝게 느끼고 있는 한국 문학과 함께 자랐다고 말할 수 있다”며 “이 소식이 한국 문학 독자들과 내 친구 작가들에게도 좋은 일이 되기를 바란다”고 했다.

‘작가 한강’을 막 알게 된 독자에게 추천하고 싶은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내 생각에 모든 작가들은 자신의 가장 최근 작품을 좋아한다. 따라서 나의 가장 최근 작품인 ‘작별하지 않는다’가 시작이 될 수 있기를 바란다”며 “또 내게 매우 개인적인 작품인 ‘흰’도 추천한다. 그리고 또 ‘채식주의자’가 있다”고 했다.

한편, 한강이 한국인 최초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가운데, 이웃나라 일본의 니혼게이자이신문, 요미우리신문 등 주요언론도 일제히 수상 소식을 비중 있게 다뤘다. ‘아시아 출신 여성 최초 노벨문학상’이라는 점을 강조하며, 한강 작가는 일본에서도 인기가 높다고 설명했다. 서점가엔 한강의 소설들로만 꾸린 특설 코너를 설치하는 등 뜨거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

아사히신문은 수상자가 호명된 순간 ‘호외’라는 표현을 쓰며 “한국인이 노벨문학상을 받은 건 처음이며, 아시아 여성으로서도 처음”이라고 전했다. 교도통신은 “2010년대 이후 사회적 문제의식을 가진 한국 문학이 세계적으로 높이 평가받았고 일본에서도 ‘K문학’으로 불리며 인기를 얻었다”며 “한강은 그중에서도 보편성과 문학성에서 선두를 달렸다”고 평가했다.

외신에서도 다양한 반응을 내놓았다. 미국 언론은 이번 수상자가 한국 작가에게 돌아간 것에 주목했다. 뉴욕타임스(NYT)는 “올해 유력한 수상 후보로는 중국 작가 찬쉐 등이 거론됐었다”며 “한강의 수상은 놀라운 일”이라고 전했다. AP통신은 “한강의 이번 노벨문학상 수상은 점점 커지고 있는 한국 문화의 세계적 영향력을 반영해준다”고 분석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도 한강의 수상 소식을 비중 있게 다루며 “그는 소설, 에세이 등을 통해 가부장제, 폭력, 슬픔, 인간애 등의 주제를 다양하게 탐구해왔다”고 소개했다. 아울러 한강의 작품 ‘작별하지 않는다’가 내년 영어판 ‘We do not part’로 출간된다고 전했다.

프랑스 일간 르피가로는 10일(현지시간) 오후 스웨덴 한림원의 수상자 발표가 나온 뒤 이 소식을 홈페이지 대문 기사로 전하며 “온라인 베팅 사이트의 예상을 뒤엎었다”고 전했다. 일간 리베라시옹은 스웨덴 한 일간지의 문학 담당자가 “올해 수상자 선정은 문화 엘리트들을 놀라게 할 것”이라고 예측한 사실을 공유하며 “다른 이들이 중국 찬쉐, 일본 무라카미 하루키 등에 걸었지만 수상자는 한국의 한강이었다”고 소식을 전했다.

한강의 이력도 새삼 주목받고 있다. 어린 시절 고향 광주를 떠나 서울로 올라와 풍문여고를 거쳐 연세대 국문학과를 졸업했다. 대학 졸업 후 잡지사 ‘샘터’에서 근무하다 1993년 계간 ‘문학과사회’에 ‘서울의 겨울’ 외 4편의 시로 등단한 후, 이듬해인 1994년 서울신문 신춘문예 공모에 단편소설 ‘붉은 닻’으로 거푸 등단했다.

한강의 2024년 노벨문학상 수상 소식에 네티즌들도 들썩이고 있다. 한강의 소설 목록을 공유하거나, 그가 인문계 출신으로서 쾌거를 이뤘다는 점을 언급했다. 소셜미디어 엑스(X) 등 온라인에는 “금일부로 ‘문송합니다’ 사용 금지” “국문과 최고 아웃풋” “문과는 승리한다” “노벨문학상 수상작을 원서로 읽을 수 있게 됐다” 등의 재치 있는 반응이 줄을 이었다. ‘문송합니다’는 ‘문과라서 죄송합니다’라는 의미로, 인문계 학생들이 취업난을 자조하는 표현이다.

노벨문학상 시상식은 알프레드 노벨의 기일인 오는 12월 10일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있을 예정이며, 수상자에게는 메달과 증서 그리고 상금 1100만 크로나(한화 약 13억 4000만원)가 수여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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