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주의 이론 권위자’ 앤더슨 명예교수 내한 강연 “아시아 젊은 혁명가들, 독립 쟁취 후 독재자로 전락”

ㆍ“폭력적 최후 맞은 통치자의 아내·딸이 여성 지도자로”
근대의 산물인 민족주의는 21세기에도 주요한 화두다. 마크 리퍼트 주한 미국대사 습격사건도 한국 사회 내에 잠재한 극단적 민족주의의 발로라고 볼 수 있다.
민족주의 이론의 세계적 권위자 베네딕트 앤더슨 미국 코넬대 명예교수(79)가 내한했다. 앤더슨은 대표작 <상상의 공동체>를 통해 민족 개념이 근대 자본주의 발전 과정에서 사실상 ‘발명’된 것이며, 이는 소설·신문 등 문화적 매개에 의해 가능했다고 주장했다. 1983년 초판이 나온 이 책은 1990년대 이후 동구 사회주의 블록의 해체와 함께 종족 민족주의 국가가 부활하면서 더 큰 주목을 받았다. 

베네딕트 앤더슨 미국 코넬대 명예교수가 지난 3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비전포럼’에 참석해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 국립아시아문화전당 제공

앤더슨은 지난 3일 광주 국립아시아문화전당에서 열린 ‘2015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비전포럼’ 기조연설을 통해 최근 변화하고 있는 아시아의 민족주의 양상에 대해 강연했다. 유럽에서는 19세기 후반~20세기 초반 제정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등이 붕괴하면서 많은 민족 공화국들이 탄생했지만, 아시아는 여전히 영국·프랑스·네덜란드 등 제국주의 국가의 식민 치하에 있었다. 양상은 일본이 등장하면서 바뀌기 시작했다. 
일본은 벵골·미얀마·인도네시아 등에서 서양 제국주의 국가와 함께 싸울 청년을 모집했다. 일본으로부터 근대적 군사 훈련을 받은 이들은 일본이 패퇴한 이후에도 서양 제국주의 국가와 싸웠고, 끝내 독립을 쟁취했다. 미얀마의 아웅산, 인도네시아의 수하르토 등은 일본으로부터 훈련받은 인물이었다. 
그러나 이들이 권력을 잡은 후 부패한 독재자가 됐다는 사실은 아이러니다. 젊은 혁명가이자 군인이었던 이들은 곧 자신의 권위에 도전하는 젊은이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텔레비전 같은 대중매체, 징병제, 교육 등을 통해 권력의 기틀을 공고하게 다졌다. 
앤더슨은 아시아와 다른 지역의 차이도 지적한다. 가장 흥미로운 점은 남성중심적인 아시아 사회에서 유럽보다 앞서 여성 정치 지도자가 배출됐다는 사실이다. 근대 세계사 최초의 여성 총리인 시리마보 반다라나이케(스리랑카)를 비롯해 인디라 간디(인도), 베나지르 부토(파키스탄), 메가와티 수카르노푸트리(인도네시아), 글로리아 아로요(필리핀) 등이 그 사례다. 
앤더슨은 “이러한 아시아적 패턴은 아메리카, 유럽, 아프리카나 중동에서는 찾아보기 힘든 것”이라며 “그들 거의 모두가 부유한 대가족 출신으로 대부분 폭력적인 종말을 맞은 통치자 남성들의 아내나 딸”이라고 밝혔다.

다른 지역으로의 이주가 활발해지면서 민족 개념은 모호해지고 있다. 태국 인구 중 14%가 중국계이지만, 이들은 국회 의석의 75%를 차지하고 있다. 앤더슨은 이들이 성공적인 비즈니스를 위해 정계에 진출했다고 보고 있다. 그러나 이들 중 누구도 스스로 중국계임을 내세우지 않는다. 정치인들끼리는 정적을 반역자, 사기꾼, 부패한 사람으로 비판할지언정, 민족 정체성을 언급하지는 않는다. 그것은 일종의 금기에 가깝다. 
2015 국립아시아문화전당 비전포럼에서는 앤더슨 외에도 강명구 서울대 교수, 조이스 류 대만국립교통대 교수 등이 아시아라는 지역의 경계와 지식의 확산에 대해 발제했다. 2005년 옛 전남도청 부지에 짓기 시작한 국립아시아문화전당은 10년 만인 올해 9월 정식 개관을 목표로 하고 있다.
 백승찬 기자 myungworry@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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