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대중음악 밴드 산파 역할을 한 ‘키보이스’ 김홍탁 기타리스트 별세(향년 79세): 12월 7일 오후 1시 3분
-빈소: 서울아산병원장례식장 3호
-입관: 2024년 12월 8일(일) 오후 1시
-발인: 2024년 12월 9일(월) 오후 3시 40분
-장지: 서울추모공원(화장) / 인천 영종도 선산
<김홍탁 해적이>
김홍탁은 1944년 5월 13일 인천에서 태어났다. 인천 동산중고 졸업, 1959년에 키보이스를 결성하여 기타리스트로 음악 활동했고 1964년 키보이스 정식 데뷔 1집 음반을 발표하면서 음악 활동을 본격적으로 시작했다. 1967년 키보이스를 탈퇴한 뒤 1968년 조용남(기타)의 추천으로 한웅(키보드), 유영춘(보컬), 김용호(드럼)와 함께 록 음악 밴드 히파이브 등으로 활동했다.
히파이브는 1970년 해체되기 전까지 ‘초원’, ‘꿈꾸는 사랑’, ‘헤이 쥬드’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 유영춘은 2년 후 영사운드에서 ‘등불’ ‘달무리’라는 히트곡을 냈다. 김홍탁은 이후 조용남 유상윤 권용남 이영덕 김용중과 함께 히식스를 결성,
1970년 1집 창작 타이틀곡 ‘초원의 사랑’을 발표했다. 히파이브는 팝송 번안곡이나 외부 작곡가 곡을 위주로 했지만, 히식스는 1집 수록곡 ‘말하라 사랑이 어떻게 왔는가를’ 등 김홍탁 자작곡 중심으로 활동했다.
히식스는 1970년 7월 제2회 보컬그룹 경연대회에서 키보이스를 누르고 우승했다. 이해 후반 김용중 대신 명지대 3학년이던 최헌을 영입, 1971년 ‘히식스와 함께 고고를’이라는 음반을 냈다. 1972년 미국으로 건너갔다가 1990년대 초 귀국해 히파이브 멤버였던 유영춘, 그리고 그의 아들과 함께 ‘선생님 아빠 그리고 나’라는 음반을 냈다.
1996년에는 서울재즈아카데미를 설립했다. 2009년 건강을 돌보기 위해 양평에 온 김홍탁은 심혈관 이상으로 두 번이나 양평소방서 구급대 신세를 졌다. 극적으로 생명을 구한 뒤 소방서 직원과 양평군민들에게 음악 재능기부를 시작한 양평재능나눔36.5 결성, 2018년 순직한 고 오동진 소방관 온라인 추모음악회 기획, 김홍탁 유튜브 방송, 567NLL(Neighbour Love Life) 이웃을 사랑하며 살아가는 사람들 구성 활동해 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