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유천(부평올스타빅밴드 단장)
얼마 전 지인을 통해 한명숙 님의 부고를 받게 되었다. 이야기 중이었지만 그분이 노래 부르던 모습이 마치 영화의 한 장면처럼 떠올랐다.
내가 한명숙 님을 처음 뵌 건 2008년이었다. 그해 부평올스타빅밴드 정기연주회가 부평구청 7층 대강당에서 열릴 예정이었는데, 한명숙 님을 꼭 초대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당시 나는 우리나라 대중음악사에 관심이 많았다. 특히 부평과 미8군 무대는 밀접한 관계가 있었던 터라 미8군 무대 출신인 한명숙 님의 노래를 직접 듣고 이런저런 궁금한 이야기도 나누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해서 직접 한명숙 님을 뵙게 되었는데, 막상 리허설하시는 모습을 뵙고 ‘연세도 있으신데 노랠 잘 하실 수 있을까’했던 나의 기우는 단박에 사라졌다. 예전 전성기 때와 조금의 변화도 느낄 수 없을 정도였기 때문이다. 그날 ‘우리 마을’, ‘사랑의 송가’, ‘Walk away’ 그리고 최고의 히트곡 ‘노란 샤쓰의 사나이’ 이렇게 네 곡을 부르셨다.
그런데 당일 리허설에 가져 오신 악보에는 몇 곡의 스탠더드 팝송이 더 있었다. 처음에는 의아한 생각이 들었다. 내가 생각하는 한명숙 님은 그냥 가요를 부르는 원로가수였기 때문에 팝송을 부를 거라고는 전혀 예상치 못했기 때문이다. 리허설 때 몇 곡을 부르셨는데 평생을 음악해온 내가 깜짝 놀랄 정도로 팝송을 너무 잘 부르셨다. 관객층을 생각해서 공연 때는 ‘Walk away’만 부르실 수밖에 없었다.
나중에 미8군 무대에 대해 공부하면서 그분들이 원래는 무대에서 미군을 상대로 팝송만 부르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자연 팝송을 잘 부르시는 것은 당연한 일이였던 것이다. 한명숙 님에 대한 그날의 기억은 멋진 노래와 우아한 무대매너 뿐만이 아니었다. 무대 밖에서 말씀하실 때와 작은 움직임에서도 기품이 있으셨고, 사람을 대함에 있어서도 고고함이 느껴졌다. 공연을 마치고 뒤풀이 장소인 삼겹살집에까지 오셔서 한참 이야기도 나눈 뒤, 수원에 사신다고 해서 택시를 불러 아쉽게 보내드린 기억이 새롭다.
지금 K-Pop은 어찌 보면 미8군 출신 음악인들이 씨앗을 뿌렸고 그 열매를 따먹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아무도 그들에 대한 최소한의 관심과 존중도 없는 것 같다. 우리나라 대중음악계는 오직 돈이 목적인 사람들만이 가득한 것 같다. 미국 대중음악 시상식인 ‘Grammy Awards’나 ‘Hall of Fame’ ‘American Music Awards’ 등을 보면, 표현이 좀 그렇지만 이미 한물간 가수나 뮤지션들이 무대에 등장하면 당대 최고의 인기가수라 해도 기립박수로 예를 표하는 장면을 보게 된다. 우리에게도 이렇듯 K-Pop의 씨앗을 뿌린 이들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중에 TV를 봐서 알게 된 거지만 한명숙 님이 당시 엄청난 생활고로 힘들게 생활하셨다고 한다. 그럼에도 전혀 내색 없이 기품과 자존감을 잃지 않으셨던 모습을 떠올리면서 한국전쟁 이후 힘들었던 우리 민중들에게 노래로 희망과 위안을 주셨던 것에 감사드린다. 부디 평안히 영면하시기를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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