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택수의 耳目口心書’-1

1. 생태통로
청계동에서 치동천을 따라 청계교를 건너 일터까지 도보로 출근을 한다. 오산천과 만나는 지점에선 정비 공사가 아직 끝나질 않아 대로변으로 올라와서 반석산 쪽을 향해 걸어야 한다. 생태통로를 겸하는 반석산 녹색교가 나오면 그쪽으로 올라와 숲을 끼고 산책을 하는 느긋한 걸음으로 일터에 이른다. 생태통로는 비용도 많이 들고 해서 다른 나라에선 효용성을 따져 설치를 피한다는데 풍수의 나라인 우리는 지맥이 끊기는 걸 저어하여 도로와 도로 사이의 비탈을 연결한다. 그 사이로 산짐승들뿐만 아니라 조류며 곤충류들까지 로드킬을 당하지 않고 건너갈 수 있다. 우리만의 고유한 풍수관이 생명의 다리가 되고 있는 셈이다.

2. 산불
우리나라 대형 산불 지역의 공통점은 소나무림 우점지역이다. 활엽수 어린나무들을 베어낸 소위 ‘숲가꾸기’ 사업이 진행된 숲인 것이다. 숲에 살아 있는 활엽수가 많을수록 불이 커지지 않고 작아진다. 물을 머금은 활엽수가 소방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대형 산불은 모두 자연의 흐름을 거스르며 세금이 투입된 지역에서 발생한다. 진화를 위해 가용한 헬기가 산림면적 대비 우리의 6분의 1도 안 되는 일본에선 최근 대형 산불이 거의 사라졌다고 한다.

3. 습설
사월이 눈앞인데 폭설이다. 겨우내 내린 습설. 우산으로 받는 눈이 묵직하다. 나무들에겐, 특히나 침엽수인 소나무에겐 공포의 눈이다. 눈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부러지고 꺾인 가지들이 전장을 방불케 한다. 지구온난화와 해수면 상승 그리고 대기 수증기의 과도 유입이 연쇄적으로 스친다.

4. 고라니 무덤
나무 사이로 자세를 낮추며 쏙 숨는 것이 고라니다. 지난 겨울을 어떻게 났나 모르겠다. 야근을 할 땐 선물로 받은 견과류를 나눠 먹기도 한 사이다. 잘 보면 저마다 생김새가 다른데 나는 그 귀 모양으로 식별한다. 계수나무 잎 모양도 있고, 은사시나무 잎모양도 있다. 이파리 사이로 쫑긋 내민 귀로 내 일거수일투족을 경청할 땐 별 볼일 없는 나도 무시 못 할 중요 인사가 된 것 같다. 누가 나를 이렇게 솔깃해 할 것인가. 요즘은 고라니 보기가 힘들어졌다. 공원 관리인들에게 여쭈니 내다버린 반려견들의 소행이라고 한다. 한 해 동안 묻어준 것만 여섯 마리라니. 맹수로 변한 반려의 사랑이 끔찍하다.

5. 1.55℃에서 살기
1.5℃. 2015년 유엔기후변화협약총회에서 전 세계 195개국이 서명한 지구 평균온도 상승 억제 목표였다. 2024년에 1.55℃로 상승하면서 마지노선이 무너졌다. 인류의 존폐를 위협하는 숫자에 나도 한몫 거들었을 것이다. 그렇지 않아도 난방비에 전전긍긍하고 있던 참, 내가 꺼내든 건 내복과 텐트였다. 아파트 거실에서 야영을 한다는 기분으로 식구들을 설득했다. 실내 온도를 17도로 맞춘 뒤 온수 주머니를 품고 들어가면 서로의 체온까지 더하여 텐트 안이 아늑한 게르로 바뀐다.
‘몽골 사람들은 도시에 정착한 뒤에도 게르를 포기하지 않는다고 해. 현대식 주택 옆에 게르를 치는 거지. 우리에게도 유목민의 피가 흐르고 있는 거 아닐까.’
‘그럼 여기가 몽골 초원이란 말이지?’
지구 온난화의 심각성 대신 이런 농을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니 평소의 불면증도 한결 가벼워지는 걸 느낀다. 밖엔 눈보라가 치고 지붕은 쿨룩거리는데 서로를 껴안고 체온을 나누던 유년시절의 겨울밤으로 되돌아간 듯도 하다. 무찌르고 물리치며 어떻게든 피해야할 혹한이 그렇게 조금은 다정해졌다.

‘손택수의 耳目口心書’로
독자 여러분을 찾아갑니다.
시인이 보고 듣고 느낀 짧은 글들로
팍팍한 세상살이 위안이 되길 바랍니다.
【편집자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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