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광석 기자
프란치스코 교황이 선종했다. 향년 88세. 교황청 궁무처장인 케빈 패럴 추기경은 “프란치스코 교황이 21일(현지 시간) 오전 7시 35분 아버지의 집으로 돌아가셨다”며 “그는 우리에게 복음의 가치를 충실히 하고, 용기를 갖고 보편적인 사랑을 실천하며 살도록 가르쳤다”고 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기관지염으로 지난 2월 14일부터 입원 치료를 받던 중 추가로 폐렴 진단을 받고 한때 위중한 상태에 빠졌다. 지구촌 곳곳에서 교황의 회복을 기원하는 기도회가 열렸고, 이후 상태가 호전돼 지난달 23일 38일간의 치료를 마치고 퇴원했다.
최소 2개월은 휴식하라는 의료진의 경고에도 교황은 선종 전날까지 빼곡한 일정을 소화하며 대중을 만났다. 퇴원 2주 만인 지난 6일 성 베드로 광장에 예고 없이 등장했으며, 로마를 찾은 영국 찰스 3세 부부를 비공개로 만났고 성 베드로 대성전을 깜짝 방문하는 등 외부 일정들을 이어갔다.
지난 17일에는 매년 그래왔듯 로마의 레비나 코엘리 교도소를 방문해 재소자와 관계자들을 만났다. 교황은 예수가 죽기 전 제자들의 발을 씻어줬던 것처럼 친히 재소자들의 발을 씻어줬지만 이번엔 그러지 못한다며 “여러분 곁에 여전히 있는 것은 할 수 있고, 그러고 싶다”고 말했다.
부활절 연휴가 다가올수록 교황의 행보는 더욱 활발해졌다. 부활절 당일 오전 교황은 바티칸 거처인 산타 마르타 처소에서 J. D 밴스 미국 부통령을 만나 비공개 면담을 가졌다. 이는 교황의 생전 마지막 외교적 만남이 됐다. 이어 교황은 부활절 미사에 참석했다.
미사 후반 운집한 신도들 앞에 모습을 드러낸 교황은 마지막 강복 ‘우르비 에트 오르비(Urbi et Orbi, 라틴어로 ‘로마와 전 세계에’라는 뜻)’를 전했다. 디에고 라벨리 대주교가 이어 대독한 전체 연설문을 통해 가자지구 전쟁 등 전 세계의 참상에 대한 안타까움을 피력했다.
미사가 끝난 뒤 교황은 의전차량을 타고 광장을 돌며 군중들에게 인사했다. 교황은 종종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어 심각한 건강 상태가 드러나기도 했다. 로마의 한 시민은 “그는 우리를 축복해줬지만 그의 목소리는 쉬어 있었다”면서 “그가 마지막 작별 인사를 우리에게 해줬던 것 같다”고 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1936년 아르헨티나에 정착한 이탈리아계 이민자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명은 프란시스 호르헤 마리오 베르고글리오(Francis Jorge Mario Bergoglio). 스물 두 살 되던 해, 예수회에 입회하며 사제의 길을 걸었다. 사제가 되기 전부터 그는 아르헨티나의 빈민촌을 드나들었다.
부에노스아이레스 대주교 등으로 봉직하면서 소외되고 고통 받는 자들을 향한 행보로 국민적인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추기경이 된 뒤에도 빈민촌 활동을 계속했고, 2013년 3월 첫 남미 출신으로 266대 교황에 선출됐다. 그때 아르헨티나 빈민촌에서는 ‘빈민가의 교황’이 나왔다며 기뻐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2014년 가톨릭 아시아청년대회와 윤지충 바오로 등 124위 시복식 집전을 위해 한국을 방문한 적 있다. 가장 작은 차를 타고 싶다는 뜻을 한국 천주교 교황방한준비위원회에 전달, 방한 기간 내내 교황은 기아자동차의 1,600cc급 소형 승용차인 ‘쏘울’을 탔다.
“자비로이 부르시니 지극히 거룩하신 삼위일체의 이름으로. 아멘. (중략)나의 무덤은 지면 아래에 마련되어야 하며, 특별한 장식 없이 단순하고 ‘Franciscus’라는 이름만 새겨지길 원합니다. 나의 삶의 마지막 시기 이 고통을, 나는 세상의 평화와 인류의 형제애를 위하여 주님께 봉헌합니다.”
2022년 6월 29일, 성녀 마르타의 집에서 프란치스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