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쓴이: 박흥열 발행인(강화뉴스)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이 화제이다. 불매운동은 일본 정부가 한국 반도체 소재 3개 품목에 대한 수출제한 조치를 취하자 7월 중순경부터 마른 풀에 불붙듯 일어났다. 일본의 조치는 누가 봐도 일제 강제징용 피해자의 손해배상청구를 인정한 대한민국 대법원의 결정에 대한 보복성 정책이다. 또한 한국을 화이트리스트에서 제외하겠다거나, 일본 관료들의 비상식적이고 무례한 태도와 발언들이 한국인의 분노를 촉발하였다.
이 상황은 쉽사리 가라앉지 않을 것이다. 그것은 대한민국의 문제이기보다 일제 식민지배에 대한 통렬한 참회가 부재한 일본으로부터 비롯되었기 때문이다. 아베 정권은 10여 년 동안 평화헌법 개헌으로 전쟁 가능한 국가로의 변신을 꾀하고 있고, 최근 북,미 협상 등 동북아 질서 재편 과정에서도 국외자로 전락하고 있다. 미-일 안보협정과 경제력을 뒷배로 삼아 발언권을 획득했던 과거에 비하면 위상이 많이 격하된 것이다. 이를 타개하기 위한 수단이 바로 ‘한국때리기’이다. 일본이 구사하는 한국때리기는 어제 오늘 이야기가 아니다. 역사적으로 일본은 자국이 대내외적 위기에 처할 때마다 정한론(征韓論)이 나왔다. 최근 일본 관리들의 무례한 언사들을 접할 때마다 정한론(征韓論)을 들먹거리는 옛 역사가 그대로 오버랩된다.
하지만 이와 같은 일본의 한국때리기가 지금도 성공하리라 믿는 이는 많지 않다. 무엇보다 지금은 제국주의가 판치던 100여 년 전하고는 판이하게 다르다. 국제정치 질서도 다르고, 경제력 등 대한민국의 역량도 예전과 비할 바가 아니다. 게다가 높은 국민의식과 향후 남북 협력이 가져올 무한한 가능성 등은 쇠락해가는 일본과 극명하게 비교된다. 이를 반영하는 듯 일본 여행 안가기, 일본산 제품 불매운동 역시 꺼지기는커녕 점점 퍼지는 추세이고, 자신감마저 느껴질 정도이다. 시간은 일본의 편이 아니라 한국의 편인 것이 분명해 보인다.
강화에도 불매운동의 역사가 있다. 합일학교를 설립한 유현 최상현 선생 이야기이다. 그는 1901년 잠두의숙에서 학생을 가르쳤으며, 1919년 3.18 강화 만세운동 때는 제자들의 참여를 독려한 인물이다. 그가 합일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던 당시 일본인 다나카가 운영하는 기선회사가 강화-인천 노선에 들어오자, 매일 배터에 나가 사람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눈 앞에 보이는 작은 이익에 현혹되지 마시오. 일본 사람들의 간교한 친절 속에 우리의 경제를 탐내고 있는 속성이 숨어있습니다. 만약에 우리나라 회사가 도산되고 나면 우리는 높은 운임을 내고서도 그들에게 압박을 받아야 하는 쓰라림을 당하게 됩니다. 일본사람이 우리나라를 병탄한 것도 이와 같은 방법입니다. 다음날 후회하지 말고 우리나라 기선을 탑시다.” (강화인물사 530쪽)
그 이후 강화에서 일본인 사업가는 발을 붙이지 못했다는 말이 강화인물사에 전한다. 최상현 선생의 일화에서 보듯 강화의 정신을 형성하는 요인 중 하나가 강한 주체성이다. 외부로부터의 압박에 지레 겁먹지 않고, 스스로 옳다고 믿는 것을 밀고 가는 힘이 그것이다. 가장 어려웠을 때도 쫄지 않았던 담대함이 지금의 강화를 만든 것이기에 지금 벌어지는 불매운동을 대하는 느낌이 예사롭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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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인터넷 강화뉴스(http://www.ganghwanew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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