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박명식(향토사학자)
부평의 물줄기는 크게 금마산 칠성약수터에서 발원하는 원통천과 안하지 도둑굴에서 발원하는 청천내가 아래 신트리(新基里)에서 합류하여 동류한 것이 두 하천의 원형이다.
이러한 원형이 변화를 가져온 것이 1939년 부평조병창 건설 할때와 1962년경 새나라자동차 공장 건설할 때 물길을 돌려 현재의 하천이 된 것이다. 이 두 하천물을 서부간선 수로에 연결하였으나, 여름철 장마때에는 간선수로 제방붕괴의 위험성 때문에 지금의 부평세관 동쪽에 여수토교(餘水吐橋)를 만들어 수위를 조절하였다.
그옆에 서부간선수로를 건너 ‘마장뜰’로 통하는 나무다리를 부평수리조합 에서 설치하였다. 이 서부간선수로 에는 한강물을 양수하는 김포 신곡리에서 이곳까지 통행량을 감안하여 15개의 크고 작은 다리가 (70~80년까지) 가설되었는데, 그중 가장 작은 다리였다. 이 다리 건너 마장뜰은 지대가 높아 수리시설이 안되어 별로 다리를 이용할 가치가 없어 그대로 방치하여 몇 해를 거듭하니 자연 걸친 나무가 삭아서 ‘사근다리’라 하였다.
이 길은 주로 김포ㆍ강화를 연결하는 지방의 주요 도로로 비교적 왕래가 빈번했다. 1938년경에는 사근다리마을이 생겼으며, 위치는 갈산동 대동아파트 105동 인근이다.
1940년대에 부평이 인천에 편입되며 계산동 부내면사무소가 폐지되고 지금의 부평1동 대림아파트 5동 인근에 있던 부평조병창 하청공사를 하던 다마보구미(玉操組)로 이사오게 되며 사근다리 인근에는 식료품가게ㆍ식당ㆍ술집등 조그만 채미전거리가 한 때 생기기 시작했다. 이것이 부평중ㆍ고등학교 입구로 이전하게 된다. 여기가 아래 신트리가 된다.
두번째 유래는 사금을 채취하였던 곳이라서 ‘사금다리’라는 유래가 있다. <끝>